--- 이용민 (shine@yes24.com)
표지에 얼룩말 무늬같은 흑백의 선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사진이 보입니다. 흑백의 선은 얼룩말에서 느껴지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선이 아니라 차갑고, 깨질 수 없는 단단한 벽, 깊은 골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가족의 모습은 공감대가 전혀 없이 제각각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혹시 동물과 인간, 가족간의 관계와 소통의 단절로 전개되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 봅니다.
동물원으로의 나들이. 따사롭고, 여유로운 한 가족의 즐거운 나들이가 되리라 기대해보지만, 교통체증으로 나들이는 시작부터 삐그덕 거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도 너무나 삭막합니다. 초현실주의와 극사실주의로 독특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은 이 작품에서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동물원에 간 사람들의 표정들과 행동의 변화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술맞고 막무가내인 아빠와 말이 없고 파리한 엄마, 그리고 별 것 아닌일로 계속 다투기만하는 나와 동생 해리는 현대의 메마른 가족을 보는듯 합니다. 그리고,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고함을 지르고, 떠드는 사람들과 달리 시달림에 지쳐 생기를 잃고, 두려운 모습입니다. 마치 자기들의 자유를 빼앗고, 그런 자신들을 보며 유쾌해하는 인간들의 야만적인 모습에 할 말을 잃은 것처럼 …. 그래서 이 동화책에서 동물원이라는 공간은 사람이 동물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사람을 구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꾸밈 없는 문장들과 극사실적인 삽화들은 작품의 묘미를 더하며, 동물의 모습으로 희화화된 사람의 모습이 곳곳에 숨어 있어, 자꾸 눈길을 끕니다. 소통과 관계를 단절시키는 촘촘한 쇠창살과 삭막하고 높기만한 벽이 책장을 넘길수록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게 합니다. 어쩌면 그 어두운 그늘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