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에 꽉 차 있는 다른 많은 책들도 각각 이런 사연이 있다. 책을 뽑아 들 때면 그것을 사려고 싸우다시피 했던 일이라든가 읽으며 뿌듯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에 돈은 책을 사기 위해서나 필요한 것이었을 뿐 다른 아무것도, 즉 내가 생각하고 싶은 그 어느것도 의미하지 않았다. 내가 간절히 필요로 했던 책이 있고, 그런 책을 갖는 것은 육체적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보다 더 필요했다. 물론 그런 책을 대영박물관에 가서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도서관 책을 읽는 것은 내가 사서 책꽂이에 꽂아 두고 읽는 것과 다른 법이다. 이따금 나는 꼴사납게 누더기가 된 책을 사기도 했으며, 그 책에 누군가가 바보 같은 소리를 끄적여서 더럽혀 놓았거나 책장이 찢어지고 얼룩지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빌려온 책보다는 헐어빠진 것이나마 내 책을 읽는 편이 더 즐거웠다.
--- p.66-67
'인간의 삶이 일순간 동안만 지속될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라. 그리고 잘 익은 올리브 열매가 땅에 떨어지면서 자기를 있게 해준 대지를 찬양하고 자기를 맺게 해준 나무에게 감사하듯이.'
내가 임종의 시간을 맞게 되면 나도 기꺼이 그렇게 생각하리라. 그런 기분은 치열한 노력을 요하겠지만 평온한 기분일 것이다. 그 기분은 공들여 다다른 무관심인간에게 이런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 보다 더 낫고, 내세의 환희를 명상하며 현세의 고통을 경멸하는 종교적 황홀경보다도 더 낫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그것은 어떤 미지의 힘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며 인간의 영혼 위에 마치 저녁 이슬처럼 내리는 평화로움이기도 하다.
--- p.267-268
우리 앞에 놓인 과업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귀족계층을 상실하고서도 그 계층이 구현하고 있던 이념만은 보존할 수 있을까? 언제나 실질적인 것에 매여 있던 우리 영국인들이 귀족계층과의 오랜 교섭에서 벗어나서도 정신적인 영역에서 그 의미만은 지킬 수 있을까?
낡아빠진 상징들을 이제는 존경어린 눈으로 보지 않게 된 우리가 평범한 옷을 입고 있는 다수 대중 가운데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귀족의 특성을 허여 받은" 사람을 뽑아서 이전의 군주보다 더 높이 받드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들에 대해 어떻게 답할 수 있느냐에 영국의 장래가 달려 있다.
지난날에는 우리 사회의 속물들이 쩨쩨함에 대한 우리의 경멸을 자기네 나름으로 증언해 왔다. 그들은 더러운 거래와 서민적 굴종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게되면 어떤 경우든 그런 사람들을 모방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이 속물들도 퇴락해 가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모방 대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보다도 더 무례한 말을 쓰고 있다.
--- p.196-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