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유행을 타는 것 같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여행지로 블라디 보스토크가 떠올랐다. 항공노선도 다양해지고,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서 앞다투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서 프로그램을 촬영하며 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블라디보스토크가 각광받는 관광지가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2014년 1월 1일부터 러시아 비자가 면제된 이후 2시간 만에 갈 수 있는 유럽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나와 함께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동생 원구는 러시아에 출장을 다니면서 블라디보스토크가 여행지로서 각광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비자면제가 이루어진 후 회사를 그만두고 블라디보스토크에 한국인 여행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블라디보스토크 여행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슈퍼스타 게스트하우스’이다.
원구에게 시베리아 횡단에 대하여 물어보니 본인도 해본 적은 없으나,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가는 게스트 가운데 도전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고 한다. 그중 한 분은 정년퇴직하신 분이셨는데, 한국에서 SUV 중고차 한 대를 사서 배에 싣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오셨다고 한다. 자동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해 보시겠다고 출사표를 던지셨다는 것이다. 성실한 가장이자 직장인으로 한평생을 살아오시고 건강이 허락될 때 못다 이룬 꿈을 이뤄보겠다고 떠나셨단다. 기차로 횡단하는 것보다 몇 배 더 체력과 시간이 소모되는 자동차 횡단에 성공하셨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도전적인 이야기로 인하여 나도 해보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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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안에 들어가니 마치 아름다운 궁궐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하얀색 건물에 파란색, 금색으로 장식된 돔이 있는 교회, 오래된 벽돌 탑, 볼가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크렘린 궁 그리고 무엇보다도 높은 4개의 첨탑이 있는 쿨 샤리프 모스크까지 모든 것 하나하나에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모스크에서 고급스런 느낌 은 나지 않지만, 하얗고 파란 돔과 첨탑, 그리고 둥글고 뾰족함의 조화 가 아름답다. 건물이 타일로 되어 있음에도 낡지 않은 느낌이 들어 이 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스크는 최근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모스크 옆 성벽에 올라 볼가 강과 카잔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정 말 아름다운 도시이다. 러시아는 추운 나라로만 생각했지 이렇게 아름 다운 도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성벽에서 내려와 하얀 성벽과 잔디밭 사이에 있는 길을 따라 볼가 강 변으로 나갔다. 우리나라 한강공원과 같은 강변공원이기는 하지만, 잔 디밭 공원이라기보다는 카페 등과 함께 잘 어우러진 곳이다. 그리고 이 곳 자체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도 백미는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볼가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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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한참 창밖을 바라보며 망상에 젖어 가고 있었다. 지루함에 쑤셔오는 몸도 움직여 보고, 고개도 돌리는 도중에 우연히 앞자리에 앉은 여자의 핸드폰을 보게 되었다. 여자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우연히 고개를 돌리다가 본 것이라서 관심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무엇인가 본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핸드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여자가 보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드라마였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나 방송에 관심이 없어서 드라마 제목이나 배우가 누구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 낯익은 배우가 출연하는 한국 드라마로 핸드폰 화면 상단에는 자랑스럽게 JTBC 마크가 찍혀 있었다.
외국을 다녀보면 한류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태국에 가족여행을 갔을 때 이란에서 단체로 여행 온 여학생들이 우리 가족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봐서 “KOREA”라고 대답하자 다들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페루에 갔을 때 자메이카에서 여행 온 자매는 더 이상 레게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국이 너무 좋아서 한국 노래, 한국 드라마 심지어 한국어까지 배우고 있었다. 덕분에 페루 마추픽추에서 자메이카 사람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행운도 얻었다. 그리고 유럽에서도 한국인 한 명 만나기 어려운 리투아니아, 그것도 국경을 넘어가는 버스 안에서 현지 사람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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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방에서도 레닌광장에 있는 레닌 두상이 보인다. 해가 저물기 전 광장과 시내를 돌아볼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샤워하고 나선 길이라 발걸음도 가볍다.
레닌광장에 있는 레닌의 두상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두상이라고 한다. 내가 유일하게 본 레닌 두상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두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니 다른 도시에도 레닌 두상이 있는 것 같다. 레닌 두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두상 아래에 앉아 광장 주변을 바라보았다.
광장 건너편에는 패스트푸드점 서브웨이(Subway)가 있다. 러시아에는 미국계 패스트푸드점 가운데 서브웨이가 가장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울란우데뿐 아니라 러시아 내 다른 도시들도 레닌광장 주변에 미국계 패스트푸드점이 있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광장에 홀로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러시아 사회주의의 상징이었던 레닌의 동상은 항상 도시의 가장 중심 광장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스럽게 레닌광장은 그 도시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 된다. 미국계 패 스트푸드점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입점하다 보니 레닌광장 주변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지만, 사회 주의 혁명을 한 레닌과 자본주의 상징인 미국 패스트푸드점이 서로를 바라보며 불편한 동거를 하는 결과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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