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 중의 하나다. 하지만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고 두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언젠가 꼭 내 책만큼은 ‘다 읽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역시 해 보지 않고 단정지을 수 있는 일은 없는가 보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다짐하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걸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허무함만이 남은 걸 보면 말이다.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마치 등산하는 것 같다. 올라가기 전에는 의욕에 가득 차서 신나게 달려보기도 하지만, 가파른 경사를 만나면 ‘이제 그만 내려갈까?’ 하는 생각도 슬며시 든다. 산 중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나 다람쥐를 만났을 때, 폭포나 개울을 봤을 때 차오르는 감정처럼 글이 물 흐르듯 거침없이 써질 때도 있다. 연필 잡은 손이 내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글을 쓰고 나면 팔목이 떨어져 나갈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신나게 써지던 글들이 어느 순간 턱 하고 막혀버릴 때도 적지 않다. 글을 써 내려가다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모든 글자들이 제각기 따로 떠돌아다니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와중에도 가장 안타까웠던 건, 방금 스치듯 지나간 생각을 잡을 수 없었을 때다. 걷다가, 또 혼자서 생각하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들을 놓치고 나서 ‘아!’ 하고 후회하는 바보 같은 짓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었다. 지금도 그 스쳐간 생각 하나하나가 소중한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슬프다. 하지만 대회에 나갈 글 아니면 일기밖에 써 보지 않다가 이렇게 ‘책’이라는 것을 써 본 것은 내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내 생각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도 깨달았으니까.
--- 김지현, 「찰칵 동그란 이야기」 ‘머리말’ 중에서
그날이 왔다.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하니 평소에는 잘 떠지지 않던 눈이 왜 이리도 잘 떠지는지. 늘 그랬듯 비몽사몽으로 세수를 먼저 하고 교복을 입은 후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아직 아침 7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는 아직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말끝을 얼버무리며 콩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나의 외침이었지만 누군가가 듣고 멈춰주었음 하는 마음으로 얘기한 거였다. 하지만
“시작합시다!”
라는 이삿짐센터 아저씨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우리 집은 각종 이사 장비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혼자 한쪽 벽에 멍하니 서서 상자 속에 담기는 우리 집을 보았다. 나 혼자만 멈췄을 뿐 모든 것은 각자의 역할대로 돌아가고 있다. 벽에 힘없이 기댄 나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올 때를 생각했다. 저 멀리 창 넘어 수목원이 보이던 우리 집. 내가 그땐 작아서였는지 한없이 크고 넓어 보였던 우리 집.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이사한 집 근처의 학교로 전학을 했어야 했지만 그것마저 설레었는데…….
--- 정유정, 「에델바이스, 소중한 추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