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금주법을 철폐해 수많은 애주가와 주류업체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루스벨트는 사실 그 자신도 상당한 애주가였다. 젊은 시절부터 술을 좋아했지만 특히 처칠, 스탈린과 함께한 여러 차례 회담에서 술에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남겼다. 한 번은 유명한 술꾼 처칠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그와 보조를 맞추어 술을 즐기다, 술자리 후 몸을 회복하기 위해 3일 동안 하루 10시간씩 잤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또 1938년에는 미국을 방문한 영국의 조지 6세(George VI) 부부를 맞이해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 대접했다고 한다. ---「1장 칵테일의 제왕 마티니와 제왕적 대통령 루스벨트」중에서
넬슨의 죽음과 관련해 술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바로 럼(Rum)이라는 술과 관련된 이야기다. 넬슨이 사망하자 당장 급한 일은 그의 유해를 성대한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는 영국까지 부패하지 않게 운반하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냉장 보관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긴 항해 기간 동안 유해의 부패를 막기 위해 임시 방편으로 럼주를 관 속에 가뜩 채웠다. 그런데 영국에 도착해 뚜껑을 열어보니 관 속에 채워둔 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진상을 파악하니 항해 도중 부하 선원들이 몰래 관에 작은 구멍을 내고 술을 빼 마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넬슨의 용기와 전투 능력, 그의 풍모에 더할 수 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던 부하들이 그의 혼이 담긴 술을 마심으로써 그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 했던 마음에 그런 것이다. ---「3장 넬슨 제독의 피, 럼주」중에서
이 만찬 메뉴 중에서 단연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중국의 명주 마오타이주(茅台酒)였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먼저 중국을 방문했던 키신저 일행의 한 보좌관은 마오타이주를 미리 맛본 뒤에 그 높은 알코올 도수 때문에 닉슨 대통령이 마오타이주를 직접 마셔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만찬 시에 마오타이주로 건배 제의가 있더라도 술을 마시지 말고 입에 갖다대는 시늉만 하라고 보고서를 올렸다. 그러나 닉슨은 이런 보고에도 불구하고 실제 만찬장에서 저우언라이가 건배 제의를 하자 얼굴을 잠깐 찡그렸을 뿐 마오타이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 「8장 닉슨의 미중수교 여정을 빛낸 마오타이」중에서
알렉산드르 2세는 암살 시도를 하는 측에서 얼마든지 불투명한 샴페인 병의 특성을 이용해 소형 폭탄을 장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알렉산드르 2세는 곧 프랑스의 유명 샴페인 회사인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 사에 속을 훤히 들여다 보이는 샴페인 병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주문을 접한 루이 로드레 사는 즉시 플랑드르의 유리 제조 장인에 의뢰하여 병 밑이 평평하면서 병 전체가 투명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형태의 샴페인 병을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병에 자사의 최고급 샴페인을 채웠다. 이때부터 이 샴페인의 투명한 병 모습 덕분에 크리스탈 샴페인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11장 암살 위협 속에서 탄생한 크리스탈 샴페인」중에서
당시 스페인 정복자들의 입장에서는 독특한 향에다 시큼털털한 풀케가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당시 멕시코에는 포도가 도입되기 전이라 와인을 만들 수도 없어서 풀케를 증류해 그들이 마시기 쉬운 술로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약한 알코올 도수의 발효주인 풀케를 높은 도수의 증류주로 만들려는 시도는 15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데킬라(Tequila)의 형제 격인 메스칼(Mezcal)이었다. 멕시코 술의 계보를 보면 풀케가 아버지라면 메스칼과 데킬라는 두 아들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