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남북전쟁 중인 1863년 11월 19일,
링컨은 게티스버그 전몰자 봉헌식에 참석해 2분간 짧은 연설을 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이는 누구나 한 번은 들었음 직한 불멸의 명연설로,
민주주의 이념을 명쾌하게 압축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남북전쟁(1861~1865) 최대의 격전지인 '게티스버그'는 북군과 남군을 합쳐 16만 명 이상이 참전, 5만여 명이 전사한 곳이다. 이 전투는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북부군의 미드 장군이
남부군 리 장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혈전이었다. 영화 '게티스버그(1993년)'는 치열했던 이 사흘간의 전투를 장장 4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 걸쳐 담아냈다. 공화당 후보 링컨이 남북 간 쟁점이었던 노예제도와 경제계획에 대한 갈등 속에서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자, 남부 11개 주는 미합중국에서 탈퇴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전쟁 초기에는 남부군 리(Robert E. Lee) 장군의 탁월한 리더십과 전쟁 지휘 능력으로 남부가 링컨으로부터 독립을 승인 받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게티스버그에서의 패배 이후 남북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결국 그랜트 장군의 대공세, 남부의 면화수출 금지, 그리고 북부의 공업기술과 경제력의 절대적 우위에 따른 총력전 결과로 북군이 승리한다. 과연 남북전쟁 승패의 전환점이 되고 가장 중요한 절대 결전지였던 게티스버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영화는 결전 장소가 선택되는 과정부터 보여준다. 최대의 결전지인 게티스버그를 전장으로 결정한 자는 남군의 리 장군도, 북군의 미드 장군도 아니었다. 전장은 다름 아닌 6월 30일, 북군의 기병대를 이끄는 '존 뷰퍼드'에 의해 결정됐다. 뷰퍼드는 게티스버그 남쪽의 고지대가 갖는 전술적 중요성을 바로 알아채고 남군보다 북군이 먼저 이를 점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병력 수에 있어 절대적 열세였던 그는 서쪽 능선의 지형을 활용해 본대 병력이 증원될 때까지 남군의 공격을 지연시키고자 했다.' 7월 1일' 오전의 전투에서 뷰퍼드는 히스 사단이 증원될 때까지 남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런데 오전 소규모 전투에서 시작된 이 전투는 리 장군의 의도와 다르게 오후에 들어서는 대규모 전투로 발전한다. 결국 병력 수에 밀린 북군은 철수해야 했지만, 전술적 중요지점인 남쪽 고지대는 아직까지 그들의 수중에 있었다. 리 장군은 당시 철수하는 북군을 향해 남쪽 고지대 묘지 언덕을 점령하라는 명령서를 이월 장군에게 보냈다. 그러나 애매한 명령 내용 탓에 이월은 쉽게 묘지 언덕을 점령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만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 이 시기를 틈타 북군은 병력을 점점 늘려갔고,
전술적 고지의 이점도 활용할 수 있었다. 이제 첫날의 즉흥적인 전투는 치열한 결전으로 치닫는다.
7월 2일 북군은 게티스버그 남쪽 고지대를 중심으로'낚싯바늘' 같은 모양으로 방어태세를 갖췄다.
당시 롱스트리트는 공격보다는 우회를 통한 퇴로 차단 방법을 권고했지만, 시간이 촉박했던 리 장군은 방어선의 왼쪽을 공격해 결정적인 승리로 이끄는 전략을 구사한다. 북군 방어선 왼쪽 끝 지역은 공격에 불리한 최악의 지형으로'악마의 소굴'이라고 불리는 바위산 지형이었다. 지형의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남군은 불굴의 의지로 정면 공격해 북군의 저항을 하나하나 물리쳐 나갔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북군의 고지 사수 의지와 탁월한 지휘 때문이었다.
특히 영화에서는 '좌측 끝 연대'인 체임벌린 부대에 주목한다. 이 부대의 퇴각은 퇴로 차단에 의한 섬멸로 이어져 북군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반복되는 남군의 끊임없는 혈전 속에서도
체임벌린은 적시 적절한 지휘로 고지를 사수해야만 했다. 특히 그는 부대가 실탄이 다 떨어져 철수해야 하는 극단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철수가 아닌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착검돌격의 신화! 공격하는 남군을 향해 탄도 없는 총에 착검을 해 역으로 돌격한 것이다. 이와 같이 거의 승리할 뻔했던 리 장군의 공격은 북군의 불굴의 전투의지로 무산됐다. 7월 3일의 결정적인 전투는 방어의 측면이 아닌 정중앙에서 벌어진다. 2일에 왼쪽 측면을 공격해 거의 승리할 뻔했던 리 장군은 계속 측면을 공격하기보다 적의 허(虛)를 찌를 수 있는 중앙을 공격하고자 했다. 또 다시 롱 스트리트는 정면 공격이 아닌 우회를 통한 퇴로 차단을 건의하지만, 리 장군은 보병의 돌격 이전에 충분하게 포병이 적 전열을 무너뜨려 준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북군에 비해 결정적으로 포병 탄약이 부족했던 남군은 북군의 전열을 충분히 포격할 수 없었다. 결국 부족한 포병대의 포격 이후, 남군 병사들의 행진이 시작됐다. 병사들의 행진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중의 백미이며, 실제 게티스버그의 핵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