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반세기 동안 지배해온 한국의 보수세력,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사상과 이념을 갖고 있는가. 또한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뿌리는 어디에 있고, 그 인맥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이 책은 이런 여러 의문들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 있는 답변을 찾아보기 위해 시도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치적 이념으로 삼는 우파세력을 지칭한다. 물론 그들의 신념체계가 그렇다 해서 언제나 그 신념체계대로 행동한 것은 아니다. 정치세계에서는 이념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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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개화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20년에 걸친 한국 근·현대사의 발자취를 밟아 보는 긴 여정에 올랐었다. 이제 한국 보수세력에 관해 제기된 질문들의 답변을 시도할 차례이다. 우선 한국의 보수세력의 기원과 사상과 공과와 자리매김의 문제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오늘의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가 1870~1880년대 조선조 말기에 수구적인 집권세력과 위정척사파에 맞서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도모한,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개화파라는 점이다. 1800~1830년대에 출생한 박규수·오경석·유홍기 등이 ‘개화파 1세대’라면, 김옥균·박영효·서광범·서재필 등 1850~1860년대 출생의 개화당은 ‘개화파 2세대’라 할 것이다. 아마도 그 다음의 ‘제3세대’는 이승만·안창호·김구·김규식 등 독립운동가들일 것이다. 1870~1880년대에 출생한 이들 독립투사들은 개화파들로부터 개화사상을 익히고 일제하에서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들 중 이승만은 젊은 시절에 개화파의 일원이었고 3·1운동 직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을 세우고 초대 대통령이 된 건국의 주역이다. 그는 말하자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한국 우익·보수세력의 시조격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건국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함으로써 오늘의 한국을 세계 제11위의 경제대국이자 정보최선진국으로 만든 주역들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전통주의 관점에서 해석하든 수정주의 관점에서 해석하든 이 점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역사적 사실이요 객관적인 자리매김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약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1960년대에는 산업화단계로, 1980년대에는 민주화단계로 들어섬으로써 서양에서 300~400년 이상이 걸린 산업화와 민주화를 불과 반세기 만에 달성하는 기적을 이룩했다. 흔히들 한국 보수세력의 업적을 건국과 산업화에만 국한하는 경향이 있으나 민주화 역시 보수세력의 업적임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에 민주주의의 기적을 이룩한 민주화세력은 넓은 의미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뚜렷이 성장한 총체적인 국민역량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정통 보수야당의 역할은 컸다. 6월항쟁의 추진주체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김영삼·김대중이 이끈 민주통일당이라는 정통보수야당과 이를 지원한 김수환 추기경 등 종교계와 각계의 지도자들, 즉 한국보수세력이었다. 6월항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당시의 언론들, 즉 ‘수구언론’이라고 매도당하고 있는 동아·조선 등 보수신문의 역할도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세력은 많은 과오도 범했다. 그들의 공로가 과오보다 분명히 더 컸지만, 과오는 어디까지나 과오이다. 보수세력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부 보수세력은 일제 때 친일하고, 이승만정권과 박정희정권 때는 독재에 앞장서거나 협력했다.
한국에서 권위주의정치가 출현한 배경은 한국 보수세력의 원조라 할 개화파들의 부국강병사상과 실력양성론, 그리고 사회유기체적 국가관과 사회진화론적 국제관과 관련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근대화와 실력배양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함으로써 국권수호와 민족주의적 가치를 경시하는 과오를 범했다. 급진적인 근대화사상에 매몰되어 국권수호를 그르친 예가 친일파로 변절한 일부 개화파들의 경우이다. 근대화와 실력배양 때문에 민주주의를 희생한 예는 명치유신모델을 따른 박정희의 개발독재이다.
한국보수세력의 또 다른 과오는 부정과 부패, 그리고 도덕적 타락이다. 장기간의 권위주의 정치는 권력층의 특권의식과 부패를 가져왔다. 이승만 정권 12년, 박정희정권 18년, 그리고 전두환정권 7년간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거치면서 부패, 특히 권력형부패와 정경유착이 누적되었다. 물론 독재만이 부패의 원인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의 노태우·김영삼·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정권에서조차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권력핵심부에는 여전히 부패의 독버섯이 온존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권력형 부패와 공직자비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공직자들이 저지른 부패의 규모는 과거 왕조시대의 탐관오리들보다 훨씬 더 컸다. 김대중 정부는 부패방지위원회를 만들어 부패추방에 나섰으나 대통령의 아들 3명이 모두 비리에 연루되는 등 그 성과는 그 전 정권과 큰 차이가 없었다. 국제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에 의하면 2005년의 한국의 부패인식지수가 5.0점으로 조사대상 159개국 중 이탈리아, 헝가리와 더불어 공동 40위를 기록해 하위권에 머물었다. 한국사회의 부정과 부패의 주된 책임은 반세기 이상 기득권 유지에 정신이 팔린 보수세력에게 있다. 한나라당이 1997년에 이어 2002년 대선에서도 패배한 원인 중 하나도 이른바 ‘정치자금 차떼기사건’이었다. 이 사실은 국민들이 보수세력의 부패에 얼마나 염증과 혐오감을 갖고 있는지를 잘 말해 준다. 부패야말로 당장 도려내야 할 보수세력의 환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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