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경험 부족은 부시 대통령이 2001년 2월 김대중 대통령에게 처음 전화를 했을 때 분명하게 드러났다.……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포용할 필요성을 대통령에게 말하기 시작하자, 대통령은 손으로 전화기의 송화구를 막으면서 “이자가 누구야? 이렇게 순진하다니 믿을 수 없군”이라고 말했다.……그날 저녁에 대통령에게 ‘이자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더 심층적인 보고서를 써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밤 11시경에 백악관으로 돌아가서 보고서를 썼다.---p.94
북한, ‘악의 축’이 되다
대통령의 기본적인 생각은 사담 후세인과 김정일이 똑같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들의 인민을 고문하는 실패한 지도자라는 것이다. 그런 서술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책 결정에서는 부적절한 기본 가정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책이 김정일을 타도하는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말이 기록되고 있음을 알고 북한의 정권 교체가 미국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선언한 것을 취소했다. 다 말해놓고서, 그는 만약 북한이 붕괴한다면 한국이 부담해야 할 엄청난 비용에 관련된 보고를 이해하게 되었고, 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했다고 털어놓았다.---p.95~96
북한, 협상 테이블에 핵무기를 내놓다
강석주가 HEU(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인정하면서, 그 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북한이 핵무기 생산을 위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지적했을 때, 그는 그것을 인정했다.……우리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평양이 우라늄에 기반한 핵무기보다 더욱 발전한 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생화학무기, 플루토늄에 기반한 핵무기 혹은 다른 무엇을 밝힌 것이라고 이해했다.
강석주는 비꼬는 투로 덧붙였다. “우리는 악의 축의 일원이고, 당신들은 신사다. 이것이 우리의 관계다. 우리는 신사처럼 논의할 수 없다. 미국의 압력으로 우리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다면, 그때 우리는 유고슬라비아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처럼 결국 죽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p.76~77
부적절한 후보에 강한 희망을 걸다
1997년의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는 2002년에 시작된 대통령 선거 기간에 보수적인 이회창 후보를 선호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사이좋게 일하고 싶었겠지만, 그들이 북한에 대한 자신들의 근본주의적 접근을 2년 동안 대놓고 반대했을 때 그것은 결코 짧은 악몽이 아니었다. 그 모든 실제적인 의도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2003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결정했고, 그런 후에 한미 관계에 정당한 관심을 갖기로 했다. 이회창은 워싱턴의 모든 내부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고, 2002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공개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과 워싱턴에서 벌어졌던 일을 생각해보면, 워싱턴의 환영은 이회창에게는 정치적으로 죽음의 입맞춤이었다. 이회창은 선거에 졌다.---p.121
강경파들의 이탈, 부시 2기 대북 정책의 전환
부시 대통령의 핵심 강경파 지지자들이 떠나자 남은 것은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귀에다 대고 “나쁜 행동에는 보상하지 않는다”고 속삭이던 속 좁은 자들의 재잘거림 없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한때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부시 대통령과 실질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와 단 둘이 있거나 최소한 해당 주제에 관해 그와 대화를 나눴던 마지막 사람이 함께 있을 때라는 것이었다. 모든 강경파들이 떠나자, 대통령은 과거 정책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p.17
잃어버린 8년, 북한은 핵보유국이 될 것인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겠다고 한 부시 행정부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실패했다. 북한은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데 성공했고,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했고,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공개 선언했고, 일정한 계산에 의해 미국을 외교적으로 이겼고, 미사일 프로그램을 발전시켰고, 한미 간 정책적 접근의 차이를 활용했다. 부시 행정부 대부분의 관리들이 북한을 다루는 데 미숙했다는 점과, 부시 행정부가 공언한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목표와 북한 정권의 교체라는 희망 사이의 불일치를 정책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급기야 북한은 국제사회의 통일된 반응을 무시하고 핵 실험을 감행했다. 그 결과 지금 미국은 2001년 부시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보다 덜 안전해졌고 한국과의 동맹관계는 악화되었다. 이런 상황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p.23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