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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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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416g | 145*215*20mm
ISBN13 9791164051830
ISBN10 116405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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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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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흙과 동물, 그리고 벌레를 사랑했다. 놀이터에서도 그네보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줄지어 이동하는 개미를 관찰하는 걸 더 좋아했다. 산책하는 개라도 만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마다 자기도 개를 키우고 싶다며 나를 올려다보곤 했다. 돌멩이와 풀꽃, 나무와 새, 강아지와 고양이. 아들이 좋아하는 것은 모두 땅 위에 있었다. 방 두 칸짜리 주공 아파트 십이층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큰 욕심없이 지냈는데 다른 욕심이 자라기 시작했다. …땅으로 내려가고 싶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다 있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어느새 아이와 나는 종이에 살고 싶은 집을 그리며 꿈을 꾸고 있었다.”
--- pp.11~12

“이 집에서는 나날이 모험이었다. 모든 날이 다른 색채와 느낌으로 다가와 놀랍고 뿌듯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힘들고 속상하고 마음 아픈 일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슴 설레고 놀랍고 짜릿한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이 집이 아니었다면 결코 알지 못하고 살았을 세상이 있었다. 모험이 넘치는 집에서 산다는 것, 눈을 뜨면 여전히 설레고 놀랍고 두근거리는 일이 기다린다는 것,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다.”
--- pp.56~57

“나는 자연 속에서 살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일거리는 넘치지만 자연도 넘친다. 그거면 충분하다. 몸과 마음을 열심히 움직이며 살 수 있는 집이다. 덕분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며 살고 있다. 이런 삶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뛰어들어서 내 이야기로 만들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우리의 이야기를 살아간다. 힘들어도 지루할 틈 없는 집에서 날마다 모험을 누리며 살고 있다.”
--- p.64

“농사라는 게 절기마다 심고 거둬야 할 작물이 달라서 한 가지가 끝나면 다른 것을 이어 심어야 한다. 그런데 우린 먼저 심은 것도 제대로 못 챙기다 보니 밭이 금세 엉망이 되었다. 풀은 무섭게 자라 작물을 다 가렸다. 날이 가물면 물 주기가 고역이고 장마가 길면 작물이 녹아버리거나 썩었다. 오이도, 가지도, 옥수수도 제때 수확하지 않으면 덜 여물거나 너무 자라서 먹을 수 없었다. 땅콩은 두더지가 파먹고 첫 옥수수는 까치들에게 바쳤다. 콩 싹은 고라니가 말끔히 뜯어 먹었다. 잎을 파먹고 새순을 뜯어 먹고 뿌리를 갉아 먹는 벌레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 pp.107~108

“비라도 오면 소리는 말할 수 없이 풍성해진다. 지붕과 차양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다르고, 빗물받이 통으로 쏟아지는 빗소리가 다르다. 마당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보도블록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다르고, 수련 항아리 위로 떨어지는 소리도 다르다. 가랑비 내릴 때 우산을 받치고 숲으로 가면 나뭇잎이 파들거리는 소리가 가득한데 그 속에 가만히 서 있으면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커다란 잎으로 빗방울을 받는 것 같다.”
--- p.146

“어느 여름밤 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데 가까이서 여치가 울었다. 온 존재로 울어대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같이 밤을 새워주는 이가 있구나. 마음이 꽉 차올랐다. 생각해보니 이 집에선 언제나 나 혼자인 적이 없다. 너무나 많은 생명이 곁에 있다. 같이 있어주는 것만큼 고마운 게 있을까. 여치 소리를 듣는 내내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토록 최선을 다하는 울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겠다고 말이다.”
--- p.165

“이 집에서는 매일 무수한 생명들이 새로 오고 또 죽어간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죽음이란 길에 널린 돌만큼 흔하다. 가을이 오면 얼마 전까지 요란하게 울던 매미가 바삭하게 말라서 풀밭에 떨어져 있고, 싱싱하게 넝쿨을 뻗어가던 오이가 나날이 누렇게 말라가며 스러지는 모습도 본다. 초여름의 정원을 아름답게 장식하던 장미도 꽃잎을 떨구는 때가 온다. 무심하게 내딛는 발걸음에 여치가 깔려 죽기도 하고, 창틀에는 늘 말라죽은 노린재며 이름 모를 벌레들 사체가 굴러다닌다. 화장실에서 청아하게 울던 귀뚜라미가 어느 결에 쓰러져 있을 때도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물통에 빠져 죽고 만 병아리를 처음 본 날은 눈이 붓도록 울었지만 이젠 어떤 죽음을 마주해도 담담하게 묻어주게 되었다. 생명은 태어나고, 번성하고, 다시 생명을 남기고 죽어간다는 것을 이제 아이들도 안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것도.”
--- p.182

“눈보라 치는 밤, 친구들은 동네에서 만나 눈길도 걷고, 사진도 찍고, 눈싸움도 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 텐데 얼마나 같이 있고 싶을까. 이럴 때 친구들과 한동네에 살았다면 ‘잠깐 애들 만나고 올게요. 모두 근처에 있대요’ 하며 달려 나갔겠지. 그래봐야 아파트 단지 어느 놀이터나 공터일 거고 모두 어디 사는지 아는 애들이라 나도 걱정 없이 ‘조금만 놀다 들어와’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 p.233

“그런데 돌아보면 이 집에서 누린 특별한 행복은 모두 내가 나열한 불편함 때문에 가능했다. 경사진 언덕길이 있어 겨울마다 아이들과 눈썰매를 탔고 넓은 마당이 있어 매년 모닥불을 피워 사람들을 불렀다. 우리 식구가 쓰지 않는 이층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불러 재울 수 있었을까. 넓은 밭 덕분에 농사지은 감자며 고구마를 친정 부모님과 넉넉히 나눠 먹었고 그 밭에서 꿩과 고라니와 두꺼비와 온갖 동물을 만날 수 있었다. 일거리가 넘치는 집이라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청소년이 되도록 집안일을 같이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모인 우리와 친밀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갔다. 이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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