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안내자로서 시작한 일의 첫 단계는 다름 아닌 내가 도시 여행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해지기 이전에, 누구보다도 먼저 나 자신이 속초의 구석구석을 걷고 공부하고 발견하고 이해해야 했다.
--- p.12, 「시작하며」중에서
문천당이 개점했던 1950년대는 귀금속과 손목시계가 널리 소비되던 시기는 아니었다. 더욱이 당시 속초 인구의 대부분이 피란민이었다. 귀금속은커녕 시계조차도 쉬이 욕심내기 힘든 시절이었다. 금은방은 동네 가게를 드나들듯이 번번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군인들이 손목시계를 필요로 할 때나 시계를 수리해야 할 때, 그리고 자식들의 결혼 같은 일생에 몇 번뿐인 커다란 경사에 예물을 맞춰야 할 때, 사람들은 영랑동의 금은방, 문천시계점을 찾았다.
--- p.46, 「02 문천당」중에서
1945년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면서 38선이라고 불리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한반도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을 기준으로 속초는 남한에서 유일하게 38선의 위쪽에 있었으므로 소련군정의 관할, 다시 말해 이북지역으로 구분되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약 1년째 되는 1951년, 대한민국 국군이 속초지역을 되찾았다. 북한에서 되찾은 땅이라는 의미로 ‘수복’이다. 수복탑, 수복로, 수복지구는 모두 되찾은 땅을 기리는 말이다.
--- p72., 「05 수복탑과 수복로」중에서
현재 칠성조선소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지닌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속초 조선업의 역사이자 배 목수들의 일터였던 칠성조선소 여기저기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을 촬영한다.
--- p.85, 「06 칠성조선소」중에서
지금도 먼 지역에서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이자 미니골프마니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주말 이틀 동안 하루 종일 머물며 무려 일곱 게임을 치고 가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그분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은 늘 한결같다. 어딜 가도 이것보다 재밌는 게 없다고. 처음에는 대체 이게 골프인지 게이트볼인지 어리둥절해 하다가 일단 한번 쳐보면 세상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는 처음이라고 이야기하게 되는 마법의 골프라고.
--- p.105, 「08 보광미니골프장」중에서
다른 지역에서 속초를 방문할 때나 반대로 속초에서 외부로 나갈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는 항구가 바로 대포항이다. 즉, 대포항은 다른 지역에서 속초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는 관문과도 같은 항구인데, 공교롭게도 항구의 역사 또한 속초의 관문 역할을 한다. 이유인즉슨 대포항이 다름 아닌 속초 최초의 항구이며, 그런 의미에서 속초가 대포항에서 비롯된 도시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75, 「17 대포항」중에서
수협 건물이 신축되면서, 이 장소는 수십 년간 그야말로 속초 수산업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수협 어판장 부두에는 수산물을 판매하거나 구입하기 위해 상인과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어로를 마치고 입항하는 어선을 맞이하는 어민들로 붐볐다. 1960년대에는 오징어를 할복하는 대가로 한 마리당 다리 2개를 받았는데, 오징어 다리 개수로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붙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고 한다. 수협은 어민들의 어판장인 동시에 어민들의 작업장이었고, 게다가 시민들에게는 수산물 시장이었다. 그렇게 수협은 속초 수산업의, 아니 속초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 p.198, 「20 (구)수협 건물」중에서
학무정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눈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멀리 설악산의 산등성이가 선명히 보이고, 아래로는 쌍천이 흘렀던 자리를 실감케 하는 강돌들과 함께 울창한 소나무들이 막힘없이 솟아 있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기둥 사이로 보이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이곳의 역사를 헤아려보게 만든다. 소나무는 고개를 들어도 끝이 잘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키가 높아서 그 자체로 유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 p.224, 「23 학무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