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에서는 불편한 것, 모자란 것을 버리는 게 아니라 삶에 데려가는 방안을 궁리했다. 공간과 물건, 시간은 점유하는 게 아니라 타인과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일은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하는 것으로 배운다고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며 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고 했다.
--- p.13
이상한 나라였다. 그 나라에 살며 마주한 말들은 어색하고 때론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차차 괜찮아지더니, 한국에 돌아와서는 처음부터 나의 말이었던 양 자연스럽게 늘어놓게 되었다. 그러자 그 말들을 닮은 사람들이 하나둘 서로를 당겨 함께 취미를 즐기고 일을 도모하는, 같은 결의 공동체가 되었다.
--- p.13
일단 무언가를 ‘안’ 하는 연습을 해봐. 너희는 1년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을 꽉 채우려는 것 같아. 봉사 기간이 끝나고 나서 Very good 배지를 받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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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라는 것은 테니스나 탁구처럼 상대방이 공을 받아내지 못하도록 공격하는 게 아니다. 캐치볼처럼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며, 상대방이 잘 받아내도록 힘과 방향을 조절해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오냐오냐한 공만 주고받으면 금세 지루해져 버린다. 미묘한 선을 눈치껏 타야 즐거운 놀이가 된다.
--- p.47
캠프힐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너그럽고 실수에 관대하다. 나였으면 쥐구멍에 들어가 칩거했을 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자기 자신을 쿨하게 용서하는 만큼 남의 결점도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던 말의 진의를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 p.70
요리를 준비하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친다. 누가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으며, 누가 어떤 음식을 싫어하는지(못 먹는지가 아니다. 싫어하는지다!) 하나하나 꼽아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고선 레시피를 조정한다. 테이블에 둘러앉을 사람들의 면면을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것도 매일, 끼니마다. 알레르기야 치명적인 문제니 그렇다 치고, 그저 ‘싫다’는 이유조차 존중받는 곳이 캠프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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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서 ‘장애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들어간 캠페인을 종종 마주쳤다.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서류를 넘기며 느낀 것은 ‘내가 장애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 p.119
장애인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 나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시험’이 아니었다. 잘하려고 애쓰며 좋은 평가를 기대하지 않아도 되었다. 비유하자면, 좋아하는 TV 채널을 하나 늘리는 일이었다. ‘내 인생’이라는 TV에 ‘관계’라는 채널을 추가하는 것! 채널의 스펙트럼이 다채로워지고 경험의 해상도가 높아지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현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그 이전보다 더 자주 웃고 더 자주 우는 인생이 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만든 빵, 함께 먹은 음식, 함께 걸은 산책길을 통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채널이 추가된다. 그 과정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감정이 집약된, 꼭 진주알 같은 선물.
--- p.122
이곳의 누구라도 못 하거나 안 되는 것은 없다. 어떻게든 같이 간다.
--- p.127
한번은 피에르라는 봉사자가 일을 대충대충 하고 요령을 피우길래 오래 지켜보다가 하이디 할머니에게 일러바쳤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썸머, 누구도 완벽할 순 없어. 피에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렴.”
이에 “완벽을 바라지도 않아요. 성인인데 자기 일은 제대로 해야죠!”라고 발끈했다가 더 기가 막힌 답을 들었다. “피에르가 그 정도인 건 그의 한계이고 그의 인생이지, 네가 화낼 일이 아니야. 피에르가 나아질지 아닐지는 스스로 결정할 문제야.”
나는 투지를 잃어버렸다. ‘나아진다’는 개념, 개인이 추구하는 ‘이상’ 자체가 각자 다르다는 것부터 인정하라니.
--- p.130
지금 당장은 우스꽝스럽고 곤혹스러운 일투성이지만, 그런 모습의 네가 되어보는 시간도 나쁘지 않아. 이 시간은 짧을 테고 우리는 분명 “그때 정말 좋았어!”라고 말할 거야. 그러니 이곳의 추억을 실패 아니면 성공으로 나누지는 마. 그리고 온 마음과 온몸을 다해 행복하렴.
--- p.166
우리는 선입견이나 오해를 렌즈 삼아 서로를 바라볼 때가 있다. 오해라고 거저가 아니다. 오해에도 수고가 든다.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오해도 없었을 테니까. 오해는 이렇게 새로운 앎의 입구가 되기도 한다. 마치 모든 수고에는 나름의 쓸모가 있다는 것을 일러주듯.
--- p.250
여행을 떠나오기 전, 이런 다짐을 했었다. 90일간의 여행은 길다. 분명히 방향을 잃을 것이다. 어긋나고 갈등하고 원망하고 후회할 것이다. 그럴 때면 이렇게 하자. 생각을 멈추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하자. 당장 곁에 있는 사람을 보자. 그 안으로 들어가자. 그게 나의 여행이다.
--- p.252
종일 굶었지만 낯선 이를 위해 나무에 올라 무화과를 따준 아이. 당장 죽을 것같이 답답해도 다시 숨을 쉬게 하는 것이 있다. 어딘가에 이렇게.
--- p.254
초초는 누구나 “거기는 위험해”라고 말하는 도시에 사는데도 걱정이 많거나 예민하지 않다. 초초의 친구들도 그렇다. 그들은 걸어 잠그는 대신 낯선 사람을 안에 들이고, 광장에 쏟아져 나와 오늘 만난 이와 피자를 나눈다. 나에게 나폴리는 ‘절대 피자’의 도시도, 마피아가 장악한 도시도, 카오스의 도시도 아니다. 먼저 웃고 서로를 안심시키며 사는 초초 같은 사람들의 도시. 나에게 나폴리는, 초초다.
--- p.321
나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자토이치』(2004)의 마지막 군무 장면을 정말로 좋아한다.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곡괭이질, 집 짓는 사람들의 톱질과 망치질이 각자였다가 어느 순간 어우러져 박자를 갖춘다. 그렇게 마을 전체가 거대한 춤의 무대가 되고 마을 사람들은 댄서가 되어 각자의 본분에서 신명 나게 탭댄스를 추는 장면. 우리가 내는 지극히 생활적인 소음들이 리듬이 되고 음악이 되고 춤이 되고 예술이 되는 광경을 나는 이 시장길에서 본다.
--- p.353
여행은 ‘모르는 책 한 권이 툭, 나의 발 앞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며 펼쳐진 이야기’와 같았다. 재미와 행복만을 기대하며 순수하게 주워 든 그 책의 제목은『백지 사전』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의 사전. 첫 장을 여니 문장 하나가 적혀있었다.
〈세상의 말들을 나만의 정의로 풀어 이곳을 채울 것. 주어진 시간은 1년〉
구체적인 지침도, 베껴 쓸 모범답안도 없었다. 부모님과 선생님, 교과서, 조직에서 쥐여준 사전에 충실히 살던 나는 이 미션을 시도가 아닌 시험으로 받아들였다. 내 몸과 마음은 뻣뻣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사전은 관대했다. 틀리면 끝인 줄 알았지만 매번 다음 장이 있었다.
--- p.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