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교육기관 비리를 담은 뉴스들은 각종 언론사의 지면을 타고 차고 넘쳐났지만, 정작 이 모든 상황의 한가운데 있는 영유아교사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은부재했다. e-나라지표를 통해 확인한 ‘어린이집 시설 종사자 현황’에 따르면 2018년 보육교사의 수는 239,996명에 이른다고 한다. 보육교사만 약 24만 명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 「여는 글」중에서
페이백은 업계의 공공연한 관행이다. 실제로 페이백을 하고 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생각보다 많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하루에 접수되는 보육교사 상담 건 중 반 이상이 페이백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한다. 면접 보러 가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페이백 이야기부터 꺼낸다. 그 형태도 다양하다. 앞서 말한 사례에서와 같이 급여의 일부를 다시 입금해달라고 요구한다든지, 4대 보험료로 지출된 금액만큼 현금으로 돌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급여 통장에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현금카드를 하나 더 만들어 비밀번호와 함께 전달해달라고 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직접 찾아서 쓰시겠다는 거다.
--- 「선생님! 이번 달에도 내 통장으로 부탁해요~」중에서
… 섣불리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교사를 보호해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원장님마저 학부모의 비위를 맞추느라 교사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교사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사과하게 만들거나, 교사의 뒤에 숨어 교사가 직접 해결하게 한다. 그러나 자신이 채용한 교사도 제대로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가 한 보육시설의 장이라 말할 수 있을까. 소속된 교사의 권리 하나조차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시설을 도대체 어떻게 믿고 내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 「아무도 교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중에서
물론 최근 어린이집 내에서의 아동학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아동학대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었음에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마치 모든 아동학대가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행동해왔다는 점에서 화가 난다. CCTV로 보육교사들의 숨통을 죄어 오면서도, 정작 가정에서의 아동학대에 대한 부분은 딱히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보육교사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듯하다는 인상을 받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다.
--- 「3%를 전체로 간주하는 사회, 0.25%로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사회」중에서
어쩌면 오늘날 어린이집 내 CCTV가 아동학대를 예방하는 기능보다는 학부모들의 의심과 교사들의 상처를 키우고 이들 간의 감정의 골을 깊어지게 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학부모에게는 의심을, 교사들에게는 상처만 더하는 CCTV」중에서
“너 빨래 잘하겠다?” 첫 직장을 갖게 된 후, 뿌듯한 마음을 안고 찾아뵌 고등학교 은사님께 들은 말이다. 취업하기 힘든 이 시기에 잘되었다고 진심으로 축하하시며 동시에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 분명 농담이었을 것이다. 비전공자라서, 그 속을 자세히 알지 못해서 그냥 툭 던진 한마디였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는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직 내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상처로 자리 잡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애들 빨래해주려고, 똥 기저귀 갈아주려고, 뒤치다꺼리하려고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너 빨래 잘하겠다?”」중에서
거듭 말하지만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을 정서적,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사람은 교사라 할 수 없고, 그러한 사람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손가락질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모든 교사들을 잠재적 아동학대자로 바라보고 CCTV에, 녹음기까지 이용하여 감시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내 아이의 어린이집, 그 어린이집의 교사를 조금만 더 믿어주고 격려해준다면, 우리 아이들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교사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 「설마…… 우리 아이도 아동학대를 당하는 거 아니야?」중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영유아교사들에게 유독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들에게는 교사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더불어 술을 마시는 일이든, SNS에 사진을 올리는 일이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교사도 할 수 있으며,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 「영유아교사들은 놀러 다니면 안 되나요?」중에서
… 실패를 겪으면 비록 조금 쓰라리긴 하겠지만, 아이들은 충분히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나 더 힘차게 도약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그 정도가 지나치게 심한 것이 아니라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체육 활동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다 녹초가 되는 경험도, 친구와 신나게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일조차 아이들에게는 유익하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그걸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 「우리 애는 힘든 활동 시키지 말아주세요?」중에서
어쩌면 오늘날 아이들은 성인인 우리보다 바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우리의 추억을 되새기며 “너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이 무안할 정도로. 적어도 그때 우리에겐 시간이 넉넉했고, 자유가 있었다. 학교 마치면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휴일이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골목길로 나갔다. 그곳에는 항상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다시 놀이터로 뛰어나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미리 정해진 규칙, 숨 돌릴 틈도 없이 촘촘히 짜인 스케줄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언제나 새장에 갇힌 새가 떠오르곤 한다.
…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어린이집과 학원을 오가며 자란 아이가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유행에 따라 휙휙 바뀌는 교육 프로그램들과 기준도, 정체성도 없는 특별활동을 하며 자란 아이는 그 활동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무언가 이것저것 많이 하기는 했는데, 남은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씁쓸해진다.
---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시절을 지켜주는 법」중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더없이 행복했던 2년 차 때의 일이다. 하지만 이 행복이 무색할 만큼 행정 업무의 위력은 너무나 강력했다. 특히 그 당시는 업무 강도가 극악이라 모든 교사들이 거의 하루에 14시간 가까이 근무해야만 했던 시기였다. 체력적 한계를 느끼며 교실에서 키보드를 천천히 두드리고 있을 때, 우리 반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던 아이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오늘 우리랑 놀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보육교사가 된 이유는 밀린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고 바른길로 이끌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아이는 이렇게 쭈뼛대며 어렵게 선생님에게 다가와 오늘 같이 놀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은 다른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단 하루도 아이들과 마음 편히 놀아주지 못하는 내가 그 순간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 「선생님! 오늘은 우리랑 같이 놀면 안 돼요?」중에서
모든 교사는 이직할 거야, 그만둘 거야, 마음먹다가도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을 보며 그 마음을 다시 내려놓곤 한다. 거듭 말하지만 영유아교사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직 아이들만 생각하겠다는 일념으로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 여러 가지로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아이들에게서 존재 이유를 찾으며 이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영유아교사들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땅의 영유아교사들이 매 순간 내딛는 모든 걸음들을 응원한다.
---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영유아교사들은 결국 이겨낼 거라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