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정도 산 사이를 거슬러 올라가자 벌서부터 울창한 밀림이 시작된다. 강 중간에는 주위의 섬에서 뿌리째 무너져내려 그대로 강물에 처박힌 나무들이 허연 뿌리를 드러낸 채 수십 그루 모여서 누워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강폭은 좁아지고 강물은 진한 갈색이 되어간다. 요즘 정글에 비가 오지 않아서 이런 흙탕물이 내려 온단다. 이런 흙탕물과는 달리 주위의 산들은 산 꼭대기 까지 새파랗게 풀이 나 있고 초록색 산들 사이에는 분홍색 겹벚꽃 같은 꽃들이 피어 화려한 색상대비를 이룬다.
--- p. 167
페루의 첫인상은 좋다. 안내책에서 읽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다. 서울보다도 깨끗한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일단 내가 보고 싶어하는 남미의 얼굴들이 많이 보여 이유없이 정이 가고 점수가 후해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가 괜히 서양 관광객의 이야기만 듣고 선입견으로 이 멋진 나라를 과소평가하거나 강도 얘기로 지레 겁을 먹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흔히 남미의 인디오라고 하면 판초 입고 모자 쓴 남자와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겹겹이 치마를 입은 여자들, 애절한 피리로 '엘콘도르 파사'를 연주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밖에도 어여쁜 숙녀처럼 생긴 라마와 산과 깊은 계곡에서 아직도 원시적으로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평생 목욕과는 담 쌓고 사는 사람들을 연상한다.
--- p.88
정글이라고 하면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기는 하지만 먼저 무섭고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가보니, 정글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안온한 삶의 터전이 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정글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문명인들의 허약함의 표징은 아닐까. 이를 테면 정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 말이다. 우리가 미개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밀림의 주민들은 정글의 법칙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정글의 일부가 되고, 정글로부터 필요한 것을 부족하지 않게 얻고 있었다. 아주 현명하게.
--- p.174
'젊은 사람들은 가기만 하면 안와.'
뺨인사를 하고 난 내 볼에는 할머니의 눈물이 묻어 있다. 단 하루를 머물렀을 뿐인데, 불현듯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에게 하루치의 외로움을 덜어드린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몇 배의 그리움을 얹어드린 건 아닌가 해서.
--- p.149
이런 끈끈한 정은 한국 사람들에게서만 느꼈던 게 아니다. 아메리카의 원래 주인 인디오들과도 똑같은 정이 오고 갔다. 알래스카부터 칠레 남단까지 다니면서 만난 원주민들.작고 잦은 코, 노란색 피부에 아이 엉덩이에 있는 삼신 할머니 손자국 몽고 반점가지 우리와 닮은 이들이 우리와 조상이 같은 몽고족이어서였을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땅의 원주민들을 만나면 낯설기커녕 살갑게 느껴졌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들의 입장에서보니 서양의 눈으로만 본 우리의 세계사 교육이 얼마나 사실과 다른 엉터리였는가도 뼈저니게 느길 수 있었다.
--- p. 16
오랜만에 손님이 온 게 반가운지 할머니는 좀 흥분한 것 같았다. 땔감을 자꾸만 화덕에 집어넣으 며 연신 내 신발을 가리킨다. 다른 아이들은 저 할머니가 네 운동화가 탐나나 보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할머니에게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운동화를 벗으라는 말 같아서 그렇게 했더니 양말까지 벗으란다. 그러면서 화덕 위에 꼬챙이를 하나 걸치더니 내 운동화와 양말을 그 위에 널었다. 그런 후 할머니는 물에 흠뻑 불어 쪼글쪼글해진 내 발을 어루만지면서 '후리오(얼마나 추웠니?)'하고 걱정해주신다.
이런 첩첩산중에서 가까이에 다른 인가도 없이 홀로 살면서 얼마나 적적할까. 할머니에게 아들은 언제 오냐고 물으니까 금방 목이 메더니 '노 세, 노 세(몰라, 몰라)'를 연발하며 막 우신다. 우리 엄마도 내가 전화만 하면 언제 올 거냐고 하면서 저렇게 우시는데, 갑자기 가슴이 찡해진다.
--- p.147
'어떻게 원주민들을 도울 생각을 하셨어요?' 내가 묻자, 박 선생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는 표정이다. '우리는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받은 만큼 갚을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건 그 사람들이 이미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단계를 지났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은혜를 입은 만큼, 아니 거기에 이자를 붙여 다른 사람들을 정성껏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하는 길일 뿐 아니라 인생을 바로 사는 길이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인생은 약간 손해보는 듯 사는 게 마음 편안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하셨다. 지금 당장은 손해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라면 언젠가는 내게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설령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는 편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좋은 것이라고 하셨다.
--- p. 95
밥을 먹고 집안을 같이 치우면서 카르멘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고, 군것질도 좋아하지만 아무도 뭐가 먹고 싶다든지 부족하다는 불평을 안한단다. 자기도 없는 줄 뻔히 알면서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맞춰서 산단다.
그래도 자기집은 옥수수와 후리홀(팥)밭, 커피밭이 있어서 적어도 먹을 것 걱정은 없으니 다행이 아니냐고 웃는다. 그 웃는 모습이 또 행복의 비결을 아는 것 같다, 그렇다 행복은 순전히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다. 토르티야와 후리홀레스만이 정상이고 그 외의 것은 특별 보너스라고 생각하면서 매일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사람과 다른 것을 바라며 늘 불만에 차 있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똑같은 상황과 조건하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불행할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잊기 쉬운 진리를 과테말라의 깡촌 호수 마을 산동네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교훈으로 다시 한 번 여행의 본전을 찾은 것 같다.
--- p.296-297
나는 감자를 심어본적은 없지만 아주 통통하게 살찐 감자를 캐본적은 있단. 파키스탄의 훈자마을에서 민박할때였다. 그곳에서는 끼닛거리로 감자나 당근이 필요하면 시장에 가지 않고 호미를 가지고 밭으로 나간다. 밭 이랑에서 누렇게 퇴색한 줄기를 잡아 당기면 흙이 잔뜩 묻은 굵은 알감자들이 줄줄이 끌려 나온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마침 그때가 감자 수확철이라서 말리는 할아버지를 겨우 졸라 하루 종일 식구들 감자캐는것을 거들었다. 식사때마다 내가 캔 감자를 볶거나 쪄서 반찬을 만드는데 달디단 꿀밤 맛이었다. 그나저나 감자의 원산지는 남미의 안데스 산맥 중앙고원 지역이라지? 옥수수는 중미인 멕시코가 원산지다.
인디오들이 옥수수덕에 찬란한 마야 , 잉카 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설은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먹는 문제가 해결돼야 문화든 신앙이든 가능할 테니까. 그래서 일까 과테말라의 오래된 도시 체체테낭고의 아주 유명한 성당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제단 한옆에 머리가 옥수수 모양으로 된 신이 모셔져 있다. 그냥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신이 얼마나 고맙고 귀할까 중남미 어디를 가나 드넓은 옥수수밭이 눈에 띄고 시장에는 옥수수 말린것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 p. 200
<소금호수에는 프러밍고 분화구에는 아직도 끓는 물이>
달의 골짜기를 보았으니 어제 여기서 가 볼 곳이 두 군데 남았다. 하나는 플러밍고가 살고 있다는 아타카마 호수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간헐천 지역, 앨 타티오이다. 아타카마 호수는 물이 있는 호수가 아니라 넓은 소금사막 가운데 군데군데 있는 울응덩이들을 일컫는다. 이 아타카마 호수에는 플러밍고가 가득하다. 나는 이날까지 플러밍고가 사막지역 호수에도 소식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소금호수를 자세히 보려고 차에서 내리니 발에 밟히는 소금이 하도 두껍고 결정이 가늘어 마치 싸락눈이 왔다가 녹은 것 같다. 여기저기 있는 물웅덩이의 초록색 물 속에는 작은 새우 모양의 플랭크톤이 살고 있다. 이것이 플러밍고의 먹이이며 옛날에는 바다였다는 증거라고 한다. 같익 간 친구들에게 “소금호수에서 플러밍고가 사는 것 알았던 사람 ?” 했더니. 모두 고개를 젖는다. 다행히 나만 무식한 건 아니었다.
--- p.80
<소금호수에는 프러밍고 분화구에는 아직도 끓는 물이>
달의 골짜기를 보았으니 어제 여기서 가 볼 곳이 두 군데 남았다. 하나는 플러밍고가 살고 있다는 아타카마 호수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간헐천 지역, 앨 타티오이다. 아타카마 호수는 물이 있는 호수가 아니라 넓은 소금사막 가운데 군데군데 있는 울응덩이들을 일컫는다. 이 아타카마 호수에는 플러밍고가 가득하다. 나는 이날까지 플러밍고가 사막지역 호수에도 소식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소금호수를 자세히 보려고 차에서 내리니 발에 밟히는 소금이 하도 두껍고 결정이 가늘어 마치 싸락눈이 왔다가 녹은 것 같다. 여기저기 있는 물웅덩이의 초록색 물 속에는 작은 새우 모양의 플랭크톤이 살고 있다. 이것이 플러밍고의 먹이이며 옛날에는 바다였다는 증거라고 한다. 같익 간 친구들에게 “소금호수에서 플러밍고가 사는 것 알았던 사람 ?” 했더니. 모두 고개를 젖는다. 다행히 나만 무식한 건 아니었다.
---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