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이처럼 주관적이다. 내 친구처럼 인생의 불행이 덧니 몇 개로 결정지어 질 수도 있고 이 꼬마아이처럼 피를 팔아 끼니를 이어가야 하는 극빈의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 끼며 사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마음 안에 있다는 말이 딱 맞다. 다시 한번 아이를 쳐다본다.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참 기특하다. 극빈자의 둘째딸로서 이 아이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에 가엾고 딱하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다.
앞으로 살면서 일상은 고달플지언정 절대로 웃음을 잃거나 삐뚤어지게 자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특한 꼬마에게 정표로 무엇인가 주고 싶어 주머니에 있던 빨간 복주머니 모양의 열쇠고리를 손에 쥐어 주었다
'꼬마친구 최고의 행운을 빌어요!'
꼬마는 고맙다는 인사 대신 한 번 활짝 웃어 보인 후 뒤돌아 몇 발짝 가더니만 다시 내게로 와서 손을 내민다. 고사리 같은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조악하게 인쇄된 복권 한 장. '나도 한국이모에게 최고의 행운 운을 빌게요.' 아이는 또록또록한 영어로 말하더니 한 번 안아줄 틈도 주지 않고 뒤돌아 달아나듯 뛰어간다. 오늘 아침 나의 하느님은 꼬마 여자아이를 앞세워 내게 '행복해지는 법'을 확실히 가르쳐쳐 주었다
--- p.84
필립은 베트남에 친구들을 남겨두고 자기만 캄보디아에 일주일 예정으로 왔다고 한다. 프놈펜에 도착했을 때는 베트남으로 돌아가기까지 만 하루가 남아 있다. 그래서 데이트 장소로는 끔찍하기 짝이 없지만 시간이 없는 그를 위해 '킬링필드' 의 참혹한 현장 두 곳을 함께 가보기로 했다.
하나는 프놈펜 도심에 있는 '투올 슬렝'이라는 형무소 겸 고문실이다. 76년에서 79년 사이에만 2만명 정도가 여기를 거쳐갔다고 한다. 고문실에는 고문당한 사람들의 사진과 고문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눈을 뜨고 제대로 볼 수도 없고, 침을 삼킬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한 현장에서 키득거리며 웃고 떠드는 한 무리의 외국 관광객이 있다.
--- p.28
처음 중국에 도착할 때는 중국말을 전혀 못해 겨우 한문 필담(筆談)으로 꼭 필요한 의사전달만 하는 수준이었는데 베이징에서 조그만 식당에 들어갔다가 중국 아저씨 둘과 같은 식탁에 앉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한참 중국말을 해대더니 나에게 묻는다.
'니 똥마?'
엉겁결에 질문을 받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니'는 '너'라는 뜻이고 '마'는 물음의 똣이니, '너는 똥이냐?'라고 묻는 것 같다. 설마 그러랴, 다른 뜻이겠지 싶으면서도 나보고 똥이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뿌똥!'
나는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뿌(不)'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랬더니 또 묻는다.
'팅똥마?'
--- p.57
지금 세상에는 또 하나의 종족이 일어나고 있다. 21세기 유목민 국제배낭족이다. 배낭 하나에 살림살이 모두를 넣고 다니며 온몸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사람들. 국적도 다양하고 신분과 연령층도 다양하다. 혼자 다니는 이도 있고, 커플로 다니는 이도 있고, 온가족이 다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여행이다. 그러므로 익숙한 것을 버리고 늘 새로운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살아가는 행태가 유목생활인만큼 사랑까지도 유목민답다. 길위의 사랑이 아무리 진한 감정일지라도 그것 때문에 주저앉지 않는다. 인연만큼만 사랑하고 인연따라 헤어진다.
--- p.1
이 동네 사람들은 잘 웃는다. 아니, 크메르인들은 잘 웃는다. 아이고 어른이고 눈만 마주치면 그냥 웃는다. 내전과 혼란한 정치,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지 신기하고 부럽다 못해 고맙기까지 하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개방적이고 긍정적이며 낙관적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킬링 필드와 같이 피비린내나는 살륙전쟁의 피해를 입어야 했는지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 p.112
아침에는 복권이나 개비담배등을 팔고 오후에는 무료학교에 다닌는 가난한 여자아이가 자기는 운이 좋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꼭 안아주고 싶은 기특함과 어디로 숨어 들어가고 싶은 부끄러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소위 돈많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래서 온갖 호사를 누리고 있는 우리들 중 누가 이꼬마처럼 자신있게 자신을 행운아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사소한 불편함이나 어려움에도 엄살과 투정을 부리고 사는 것은 아닌가?
행복의 조건이란 이런 것이라고 외부적인 것으로만 정해놓고 자기가 행복하지 못한 것을 몽땅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진 않은가? 참으로 유치한 생각이고 무서운 생각이다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하고만 지낼 것이며 좋아하는 사람들 틈속에서만 살 수 있겠는가 어떻게 자기 스타일이 아니거나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인간관계 밖으로 생각하며 살겠는가.
그것이 혈연이든 지연이든 학연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인연으로 만난 관계든 참을성 없고 이해와 양보와 절충이 없는 관계는 이미 시작부터 죽은 관계다 사람의 인연과 관계란 가꾸기 까다로운 꽃과 같아서 인연이라는 꽃씨가 있다고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한다는 말이 그 밤 내 가슴 안으로 아프게 파고든다.
--- p.83,263
<세계 최고 장수촌 훈자 마을의 여섯째 딸이 되어>
…훈자의 장수비결은 물말고도 신선한 공기와 한시도 놀지않고 열심히 일하는것, 그리고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그 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할아버지도 당당한 현역이시다. 나무도 패고 양도 잡고 과수원의 큰 일도 도 맡아 하신다. 음식은 특별한 것은커녕 초라하다고 느낄 정도다. 주식은 사시사철 삼시 세끼가 짜파티와 달과 감자다. 특별히 채소를 많이 먹는다거나 요구르트를 많이 마시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고기도 많이 먹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아주 소식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건강하고 장수하는 걸 보면 아까 얘기한 건강의 삼박자가 잘 맞는 모양이다.(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최근에 속속 발표되는 조사연구에 의하면 훈자 마을은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특기할 만한 장수마을이 아니란다. )
--- p.290
<세계 최고 장수촌 훈자 마을의 여섯째 딸이 되어>
…훈자의 장수비결은 물말고도 신선한 공기와 한시도 놀지않고 열심히 일하는것, 그리고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그 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할아버지도 당당한 현역이시다. 나무도 패고 양도 잡고 과수원의 큰 일도 도 맡아 하신다. 음식은 특별한 것은커녕 초라하다고 느낄 정도다. 주식은 사시사철 삼시 세끼가 짜파티와 달과 감자다. 특별히 채소를 많이 먹는다거나 요구르트를 많이 마시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고기도 많이 먹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아주 소식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건강하고 장수하는 걸 보면 아까 얘기한 건강의 삼박자가 잘 맞는 모양이다.(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최근에 속속 발표되는 조사연구에 의하면 훈자 마을은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특기할 만한 장수마을이 아니란다. )
--- p.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