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락 사르락 / 검은 모래에 이는 파도 / 등댓불 사위도록 / 바다 깊은 전설을 / 이야기하고
먼 섬처럼 / 떠 있는 배의 불빛 / 별처럼 뜨는 / 만성리 밤바다
기다리는 것은 / 오지 않는다는 걸 / 이미 알아버린 사람이 / 비우고 간 술잔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 지난날의 속죄가 / 덩그러니 담겨 있어
피맺힌 / 마래 터널 너머 / 달빛 저무는 / 만성리에 가면
사르락 사르락 / 검게 그을린 후회를 / 파도가 씻고 있다
---「만성리 밤바다」중에서

삼천배의 참선 / 깨닫지 못한 고뇌 / 벚꽃 고목에 꽂혀 / 옹골진 / 도갑사 가는 길
산문 가르는 절연 / 벗지 못하는 욕망 / 접동새 피울음처럼 / 토하는 / 도갑사 가는 길
붓끝 같은 황토밭 / 고랑 이는 아낙네 / 휘몰아치는 심사 / 섬처럼 떠도는 / 도갑사 가는 길
사는 게 수행이라고 / 산바위 미륵이 / 가만히 웃고 있다
---「도갑사 가는 길」중에서

산다는 것은 / 이별에서 이별로 / 고리를 잇는 것
세월을 견뎌낸 / 이별의 고리마다
침묵의 회한 / 실타래처럼 엉켜 / 가려진 독백 / 눈물처럼 고이고
타버린 미련 / 허무하게 지워져 / 여미는 위로 / 가엾게 외면하는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중에서

찢긴 발칸반도 구석 / 꽃씨 같은 나라 / 몰락한 귀족의 성에는
화려한 벽화 / 은둔자의 고독처럼 / 낮은 어둠에 걸리고
피의 분노 / 무채색 증거는 / 음울한 선율로 배어
종탑 높은 십자가 / 우러른 순례자의 기도 / 색 바랜 지붕을 넘는데
찢긴 발칸 반도 구석 / 꽃씨 같은 나라 / 슬로베니아에선
지금도 / 바다를 길어 / 하늘에 붓는다

『인생, 그 시시한 이야기 1』에는 김화중 시인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지나온 인생의 회한, 슬픔, 외로움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깊이 배어 있다. 김화중 시인은 그런 인생에서의 그리움과 회한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시로 표현했다. <br/><br/>누구나 말 못할 사연이 한두 가지는 있고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리고 삶을 웬만큼 산 사람은 잊을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시로 표현했다. 모두가 화려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삶을 살다 겉모습에 취해 넘어지면 삶의 마디마디에 후회의 멍에를 씌울 수밖에 없다. 아프다. 그리고 후회한다. 시인은 그런 심상을 그리고 있다. <br/><br/>『인생, 그 시시한 이야기 1』에 담긴 시들은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걸 아무렇지 않게 쓴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의 인생에 대한 반성과 희망을 빽빽히 담고 있다. 너무 외로우면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일수록 알고 지냈던 모든 사람을 그리워한다. 이 시집은 그리움과 외로움을 표현했다. <br/><br/>『인생, 그 시시한 이야기 1』은 말 그대로 하면 시시한 이야기밖에 되지 않겠지만, 시로써 사람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우리가 살았던 시대를 표현한 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시집에 담긴 시들에 대해 모든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지만, 100여 수의 시 중에 단 한 수라도 시를 읽은 사람의 머리를 때리거나 가슴을 울린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우리가 작가의 두 번째 시집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애틋한 마음을 갖게 하고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이 시들이 노래로 불리지 않더라도 몇몇 친구들의 가슴이나 눈시울을 적실 수 있다면 시인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김화중 시인의 시집 『인생, 그 시시한 이야기 1』에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스며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관조적 시선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계절의 한 지점을 걷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 지점에는 사물이나 대상에 투영된 소박한 인생이 담겨 있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 바닥을 모르면서 / 바닥을 이야기하면서 / 그렇게 또 그렇게(시 『바닥』 중에서)’처럼.

시인의 언어는 깨끗하고 담백하다. 그의 시에는 현란한 기교가 없고, 현학적이거나 관념적이지도 않다. 수사의 화려함이 없기에 오히려 더 객관화된 형상화가 돋보인다. 또한 시가 지닌 율격은 그의 시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다. 은유의 낯섦은 없지만, 시에 담긴 전통적인 운율은 노래로 불려도 좋을 아름다운 시편들이다. 그의 시는 독자를 외면하지 않고, 독자의 정서를 보듬는 마력이 있다. 우리는 순수 서정 시인의 따스한 시선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