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국화차 한 잔으로 아침을 연다. (중략) 수시로 내 마음을 침범해 오는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처지이기에 조미자 작가의 그림책 『불안』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중략) ‘화수미제’火水未濟. 여우가 강을 다 건널 즈음 꼬리를 적신다. 우리 속담으로 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다. (중략) 본원적으로 불안은 바로 꼬리를 적실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는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세상을 나의 존재라는 작은 배로 헤쳐 나가야 하는 처지에서 어떻게 삶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나. 마음대로 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며 희노애락을 겪게 되고, 그 감정에 휩쓸리려 하지 않다보니 방어기제로서 불안이 자라 커다란 괴물 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의지가지없는 존재의 불안정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존재의 불안정성에서 오는 여러 가지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화수미제, 낭패가 아니라 삶의 당연한 모습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시 시작......(중략)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보다 더한 희망이 있을까.
---「이정희, 〈불안〉」중에서
내가 학생들과 집단상담할 때 중요한 과정으로 다루는 것 중 하나가 인생 그래프 그리기이다. (중략) 내 인생의 어느 시점이 행복했고 어느 시점에서 힘들게 느껴졌는지 그려보는 작업이다. (중략) 그래프를 그려보면 힘들었을 때 어떻게 견뎌냈는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했는지 보인다. 자신의 삶을 거시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마치 인생의 그래프처럼 우리의 인생을 100가지 삶의 과정으로 되돌아보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100 인생 그림책』이다. 0세에서 100세까지의 삶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중략) 늘 인생에는 새로운 화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의 인생그래프는 그 화두들과 함께 요동치며 살아왔다. 정점을 찍었을 때도 있었고, 영점의 아래도 떨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영점의 아픔보다, 그 그래프의 곡선을 의연하게 밀고 온 내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리고 나의 인생 그래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장소현, 〈100 인생 그림책〉」중에서
꾹꾹 눌러 담은 쌀밥도 눈처럼 소복소복.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할머니, 오래 전 하늘나라로 가신 할머니와 이젠 할머니로 불리는 젊고 곱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진다. (중략) 이제는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할머니께 전할 길이 없다. (중략) 하얀 꽃밭 속의 할머니도 한때는 꿈 많은 소녀였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셨겠지.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봄을 맞이했을까. (중략) 흰 눈이 꽃이 되어 피듯 ‘내리 사랑’의 역사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가 떠올랐다. 반 고흐가 사랑한 동생 테오 부부의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그린 그림이다. 유럽에서 아몬드 꽃은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초봄에 가장 일찍 피는, 새 생명과 희망, 그리고 부활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조카에게 준 첫 선물이자 그의 37년 인생 마지막 봄에 그린 마지막 꽃그림이다.
---「이혜선, 〈꽃밭에 내리는 흰 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