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우리나라 동양학계의 발전을 위하여 불가불 하나의 구체적 제안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각 대학의 동양학 부문에서 나오는 석사.박사 학위논문을 가급적인 한 번역 위주로 회전시켜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엔 학위논문이 어떻게 번역이 될 수 있느냐고 지금까지의 통념으로 저항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일본을 실례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교육체제가 모델로 생각해 온 구미 제국의 대학에서는 지극히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특히 논문의 대상이 번역이 부재하는 고전일 경우에는 거의 백퍼센트에 가까운 기정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지금 동양학도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각 대학에서 동양학 관계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인재들이 창조적인 청춘의 중요한 시기를 논문 쓰는데 바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의 귀중한 노력이 연결점을 가지고 계속 축적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논문이 자기 혼자 읽고 마는 논문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낭비를 좀더 창조적으로 조직화해야 하지 않을까?
--- p.130
'우리 古典上의 한의학 개념을 서양의학 개념과 대비시키는 작업은 일본의 蘭學者(란가쿠샤)들이 화란에서 수입된 의학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膵臟의 膵란 말도 중국 글자가 아니라 日本人들이 만들어낸 擬字이며, 그들이 spleen을 낮은 '卑'字가 들어간 脾로 번역하고 pancreas를 새롭게 발견함에 따라 모인다(集, 聚)의 의미를 갖는 '萃'字를 고기肉변에 붙여서 새로이 만들어 pancreas를 지칭하게 하였다.'
--- p.212-213
누가 나에게 우리 고전 국역의 제일의 원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동시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동시성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우리 고전은 재활의 길을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영원히 죽음의 길을 걸을 것이다. 번역 속의 동시성이란, 번역이란 행위가 번역의 대상이 되고 있는 책자의 작자의 의식세계와 나의 의식세계와의 사이에 동질감이 성립할 수 있도록 다리놓아 준다는 뜻이다.
--- p.198
근세 서구라파철학의 역사란 기본적으로 근세 물리학이 제시한 합리적 우주의 정당화라는 테제를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않는다.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도 결국은 '물리과학의 이성'일 뿐이며, 순수이성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세계도 뉴톤고전물리학의 세계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철학적 세계관의 전환은 철학자체의 힘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외적 요소에 의하여 도전을 받음으로서 일어난 것이며, 그러므로 철학적 우주관은 철저하게 그 시대정신의 지배를 받는다.
--- p.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