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한국 문화의 형성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생산적인 주체들의 부상'이다. 생산적인 주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느 시대에서나 주체들이 당대의 문화를 구성하지만, 2000년대 이후의 주체처럼 이토록 실천적이고, 도발적이며, 창의적이지는 않았다. 이전 시대의 주체들이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지배구조'에 편입된 것과 달리, 2000년대 주체들은 생산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면서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다. 나는 이 생산적인 주체들을 '게릴라'와 '놀이족'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다섯 가지 문화코드가 당대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외양appearance이라면 그 이면에 깔린 본질essence은 '게릴라 정신'과 '놀이 정신'인 것이다.---프롤로그 중에서
가상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정체성은 유목민적 특성을 지닌다. 사람들은 가상공간의 집에 정착하지만, 그곳에서 안정감보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정착하고 있지만 이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가상공간 밖으로 새로운 관계 맺기의 욕망을 자극한다. 이 유목민적 모순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특징이다. 우리 시대 유목민들은 '나'가 중심이 되는 개인이지만, 개인으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를 만든다. 각 개인은 하나의 공동체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작은 공동체에 머문다. 개인들은 다수의 공동체에 동시에 머물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각각의 작은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은 게릴라처럼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제도와 권위에 도전하기도 하고, 혼자 놀기와 관계 맺기를 즐긴다.---'유목민 코드_가상공간과 사이버 게릴라 공동체 ' 중에서
참여세대는 이전 세대 문화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통합하는 문화적 성격을 보여준다. 참여세대는 광장 응원, 촛불집회, 정치 참여, 인터넷의 이용 등을 통해서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동시에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소비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여준다. 참여세대는 젊은 층의 자발적 집단화와 공동체 의식 그리고 개인주의적 세대 문화라는 이중적 특성을 지니며, 하나의 이념 지향성을 가지지도 않는다.---'참여 코드_참여세대의 의식과 행위 ' 중에서
몸에 대한 관심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몸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몸에 대한 관심이란 몸 자체뿐만 아니라 몸을 둘러싼 여러 가지 현상들-치장, 외양, 몸 관리 등-을 포함한다. 몸은 개인적 육체의 의미를 넘어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다. 문화, 정신, 노동, 놀이 등과 분리하여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몸은 주체의 형성 과정이며, 이데올로기의 구성 과정이기도 하다. 최근처럼 '몸만들기'가 전쟁인 적도 없었을 것이다. 건강한 몸, 아름다운 몸에 대한 갈망은 갈수록 커지고, 그것은 때로 몸에 대한 학대로까지 나타난다. 지나친 다이어트는 아름다운 몸의 추구가 아니라 몸에 대한 자기학대다. 몸은 자아 표현과 자기 보존의 장이면서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몸 코드_표류하는 몸 ' 중에서
우리 사회에서 섹슈얼리티sexuality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0년대 이후다. 과거에 보였던,'성 담론의 공적 침묵, 사적 범람'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성 담론이 대중매체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논의되면서 문화 현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시장 메커니즘이 문화 규범이나 윤리의 통제 기능보다 우세하거나, 성적 표현이 그만큼 자유로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제기된 주요한 섹슈얼리티 담론들은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과 '동성애'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남자, 혹은 꽃미남이란 단어는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 꽃미남은 자본주의 시장 메커니즘이 만든 '자본의 욕망'이면서 동시에 남성을 바라봄의 대상으로 삼는'여성의 욕망'을 보여준다. 동성애는 2000년 집단적 커밍아웃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특히 동성애는 대중문화에서 주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섹슈얼리티 코드_바라봄의 대상으로서의 섹슈얼리티의 진화' 중에서
대중문화에서 역사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작가의 시각은 역사적 보편성을 주장하는 역사학자의 시각보다 우위를 점한다. 일반 대중도 역사적 과정이나 진실의 문제보다 역사적 특수성과 재미에 더 관심을 둔다. 역사를 다룬 드라마, 영화, 소설들은 역사적 사실은 실재하지 않고 단지 텍스트로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작가들은 세상에 역사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진실에 대한 해석만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역사적 상상력이 우위를 점하는 시대에는 '역사'영화나 '역사'드라마는 사라지고, 역사'영화'와 역사'드라마'가 지배한다. 우리 앞에 놓인 역사는, 역사가 쓰인 당대의 권위와 권력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역사를 다루는 수많은 대중문화 산물을 보면서 독자, 관객,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은 역사적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허구적 재미가 탁월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사적 권위에 대한 부정이 주는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역사적 권위와 제도에 대한 해체가 게릴라 정신이라면, 그 해체된 역사를 통하여 개인적 진실을 읽어내는 즐거움은 놀이로서의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 상상력 코드_역사적 상상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