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시가 비트코인을 세상에 알리기 수 세기 전, 이미 무형이면서 중개인을 통하지 않는 형태의 돈을 발명한 사람들이 있음이 밝혀졌다. 일단 이 사람들을 만나려면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미크로네시아의 얍Yap이라는 작은 섬으로 가야 한다.
라이스톤의 역할
얍 섬에서는 라이스톤Rai stones이라는 가운데가 뚫린 거대한 돌이 전통적 화폐로 사용된다. 이 돌들은 크기가 아주 엄청난데, 어떤 돌은 가로 길이가 10피트(약 3미터)에 이르고 무게가 픽업트럭만큼이나 나간다. 얍 마을에는 수십 개의 라이스톤이 흩어져 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람들은 이 돌들을 갖고 다니면서 쓸 수 없다. 대신, 얍 섬의 사람들은 모두가 각 돌의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하며, 지난 거래에 대한 기록을 머릿속에 남긴다. 예를 들어 족장의 딸이 목수에게 배 한 척을 사고자 한다면, 그녀는 자신이 소유한 라이스 톤 한 개(예를 들어 해변에 있는 것)가 이제는 목수의 것이 되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족장의 딸이 목수에게 라이스톤 한 개를 주었다고 서로 간에 말을 퍼뜨린다.
다음에 목수가 다른 사람에게 그 돌을 주고 싶어 할 때 마을 사람들은 이를 허락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 기록에 따르면 그 돌은 이제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짧게 말해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면, 그 사람은 돌을 쓸 수 있다.)
---「1장 돈의 본질을 뒤집은 천재적인 기술」중에서
비트코인에는 사실상 익명성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에 공개되고 영구적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누구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고, 누가 누구와 거래를 하고,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의 비트코인 주소를 알아낸다면, 그 사람의 전체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비트코인은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보면 신용카드보다 더 나쁘다. 신용카드를 쓸 때는 최소한 인터넷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로부터는 자신의 정보를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4장 알트코인, 자신만의 강점으로 승부하는 코인들의 축제」중에서
전용 블록체인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들을 한 걸음 물러나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전용 블록체인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둔 조직들은 소규모의 스타트업이 아니라 월마트, IBM,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거래소와 같은 거대 조직이다. 만일 소규모의 식료품점이나 스타트업이 자신들의 공급망에 블록체인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하면 아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만, 같은 발표라도 월마트가 하면 세계인이 주목한다.
이는 암호화 업계가 스타트업과 기존 집단의 붕괴를 얼마나 강조하는지를 생각하면 특히 이상하게 느껴진다. 왜 움직임이 느린 기존의 큰 집단들이 전용 블록체인과 같은 ‘파괴적disruptive’ 기술로 그처럼 많은 이득을 얻는 걸까?
우리는 그 이유가 전용 블록체인을 구현하는 것은 실제로 기술적 과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월마트, ASX, 엑스박스가 사용하는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보다 훨씬 덜 복잡하며, 애저와 같은 클라우드 블록체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사전 지식이 거의 없어도 쉽게 블록체인을 구현할 수 있다. 블록체인을 구축하는 것은 쉬운 부분이었다. 우리가 살펴본 세 가지 사례에서 어려운 부분은 사람이었다.
---「6장 전용 블록체인, 제한된 범위 내의 알찬 혁신」중에서
암호화폐는 은행과 정부를 피하고자 하고, 밴드네임볼트는 상표청을 피하고자 했으며, 파일코인과 IPFS는 지오시티나 마이스페이스 같은 거대 웹사이트를 피하고자 하고, 네임코인은 기존의 도메인 대행자를 피하고자 했다.
요컨대 전용 블록체인은 위에서 아래로 프로세스 최적화를 수행하는 데 쓰이는 반면, 공공 블록체인은 아래에서 생겨난 보다 가치 있는 것들을 급진적이고 새로운 방법으로 기록하는 데 쓰인다.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만, 그 활용 방법은 매우 다르다.
---「9장 우아한 사기와 새로운 혁명 사이에서」중에서
블록체인 그 자체만으로는 많은 공공 블록체인 앱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사회를 재편할 수 없다. 블록체인은 단지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변화를 이끌려면, 공공 블록체인의 뒤편에 있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언론의 관심을 끌고, 정책을 만드는 정부와 협력하는 등 ‘사람’과 관련된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만 보면, 공공 블록체인을 연구하는 스타트업들은 기술 개발에는 매우 열성적이었지만 ‘사람’과 관련된 일에는 덜 열성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사람’ 문제를 다룰 필요가 없는 전용 블록체인을 더욱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전용 블록체인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되고, 또 그 일들을 아주 잘 한다. 관련하여 마이크 노보그라츠와 존 제이콥스는 전용 블록체인이 공공 블록체인보다 매력도 덜하고 야심도 덜하지만, 세상을 바꿀 잠재력이 더 크다는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다.
---「9장 우아한 사기와 새로운 혁명 사이에서」중에서
만약 화성에 식민지를 만들어놓고 처음부터 모든 돈은 암호화폐가 될 것이며 모든 자산의 소유권, 계약, 제품, 서비스가 블록체인을 사용할 것이라고 선언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구는 전혀 다르다. 우리의 경제, 사회, 정치 체제는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되어왔다. 이들을 바꾸는 것은 극히 어려운 데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란스럽고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시스템보다 그냥 잘 돌아가는 시스템을 원한다. 암호화 기술을 개발한 사람들은 너무 낙관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살피는 정부, 수십억 달러를 다루는 은행, 그리고 매년 수조 달러를 움직이는 경제를 그야말로 그냥 ‘무너뜨릴’ 수는 없다.
---「9장 우아한 사기와 새로운 혁명 사이에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