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클라이언트 쪽 실무자들은 대체로 유능하고 세심했다. 그들은 나와 소통하며 작업 스케줄과 업무 내용을 조정했다. 인터뷰 자리에 실무자가 동행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볼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구직사이트에서 일감을 확인하고 지원하는 절차부터 계약 체결과 이후 일의 진행까지, 모든 단계의 소통은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 사람의 프리랜서로서 직접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가고 있다. 직거래를 하러 길을 떠나는 농부가 된 기분이었다. 손수 재배한 농작물을 트럭에 싣고 시장으로 향하는 농부. 다른 점이라면 농작물과 달리 평판과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일까. 오늘은 업무 범위부터 방식까지, 구두로 의뢰인을 상대하고 흥정까지 마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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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빠짐없이 들었다. 두 사람이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얼마나 열정을 갖고 있는지 느껴졌다. 몸담은 공동체가 있고 그 공동체의 역사에 자부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 뜻밖에 나는 조금 부러움을 느꼈다.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지는 부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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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기자라는 직업은 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나는 내가 ‘여자’라는 점을 의식하며 살듯 나 자신이 ‘기자’라는 사실을 매 순간 느끼며 살았다. 내 인생은 일을 중심으로 했다. 공간 한복판에 거대한 쇠공이 놓인 것처럼, 나라는 존재는 일을 중심으로 휘어 있었다. 어느 날 자정이 되도록 일감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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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안에서 일하는 한 평가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더 잘해내고 싶은 열망, 더 잘해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실망시키는 것이 내겐 몹시도 힘든 일이었다. 아마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잠을 줄여가며, 스스로의 살을 깎아내며 주어진 일을 탁월하게 해내려 애쓸 터였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을 너무 진지하게 여겼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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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씨는 어떤 것이 좋으면 전체가 다 좋기를 바라네요. 하나라도 나쁜 부분이 있으면 완전하지 않은 것이고요. 올 굿.”
“네?”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올 굿(All Good)요.”
상담사가 말했다.
“세상에 그런 건 없어요. 그리고 올 굿이어야 굿인 것도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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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에서 해방되면 생활이 무너지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혼자서도 성실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꼬박꼬박 일을 했다. 오히려 일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게 아직도 낯설었다. 드로잉이나 우쿨렐레, 소품 만들기 등 원하면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많은데도 그게 쉽지 않았다. 내게 일보다 어려운 건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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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굿은 없다. 올 굿이 아니어도 굿일 수 있다. 나는 되뇌었다. 올 굿이 아닐지라도 지금 가진 것들로 삶을 꾸려나간다. 계속해서 앞을 보고 살아간다. 지나친 심각함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안간힘을 쏟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끊임없이 기대치를 낮추고 조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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