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학을 주제로 택할 것인데, 왜냐하면 들뢰즈가 예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포함해서 예술에 선도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와 반복』에서는 니체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철학적 표현방법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연극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의 혁신과 관련해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구절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들뢰즈는 몇 페이지 지나서 "현대 예술작품이 그 교환하는 계열과 순환하는 구조를 전개시킬 때, 그것은 재현의 폐기로 이끄는 길을 철학에 일러준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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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적 특이성은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운동한다. 왜냐하면 다른 것들과 동등한 거리에 있기에(혹은 '동등하게 차이나기에'), 어떤 방향으로[의미로] 배치를 선험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어떠한 친화성도 앞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모든 다양체(모든 관념 혹은 모든 사건)는 우발성의 도장을 자신의 심장 한가운데 새기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곧 다양체의 형식은 전혀 필연적이지 않으며, 특이성들의 자생적이고 항상 변경 가능한 배치를 야기한다. 각각의 다양체는 이처럼 모래가 흩어지는 대로 다시 지도가 만들어지는 '사하라'로 사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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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지적 공간은 어떠한 형식[형태]이나 주체도 포함하지 않지만, 힘과 흐름으로 가득 차 있고 유동하는 공간을 구성하면서 고정된 점이나 일시적인 흔적도 없이 움직인다. 사하라 사막과 빙산 그리고 파도의 끊임없는 미소처럼. 촉지적 공간의 본질적 특징은 방향, 좌표, 연결접속의 계속적인 변동이다. 이는 회화에 있어서 어떤 언어나 제도화된 기호나 형식[형태]의 어떤 체계(곧 어떤 해석의 시도)가 눈과 그림 사이에 끼어들기 위해 오지 않기 때문에 눈과 그림의 융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촉지적 공간의 그런 계속적인 변동은 화가에게 특별한 고행을 요구한다. 결정적인 방향, 필연적인 윤곽, 암묵적인 서사를 강요하지 말고 오히려 힘들의 은밀한 작용에 초점을 집중시키고 사물들의 일상적인 모습 밑에서 우글거리는 흐름을 가시화하라. 사하라 사막을 그려라, 심지어 하나의 사과에서까지도 사하라 사막을 그려라. 힘을 볼 수 있게 하라. 왜냐하면 힘은 형식과 감각을 넘어서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어떠한 선도 하늘과 대지를 나눌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늘과 대지는 같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지평선도, 배경도, 투시법도, 한계도, 윤곽이나 형식도, 중심도 없다".
--- pp.124~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