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출제되었나. 수능 기출 출제순위 3위에 해당할 만큼 수능이 사랑한 작가다. 수능에는 94년 1차에 《산》, 96년에 《삼수갑산》, 99년에 《진달래꽃》이 출제되었고, ebs에는 최근 5년간 3개이상의 작품이 수록되고 있다. 뒷 장 표를 참조하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삶과 작품경향.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으로 1902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철도 공사장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당해 정신 이상자가 된 후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할아버지 손에서 컸다. 이때 숙모가 김소월에게 이야기의 재미를 가르쳐 주었다. 김소월은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교때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을 만났다. 김억의 격려를 받아 1920년 동인지《창조》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25년에는 우리의 국어시험에 그렇게도 자주 나오는《진달래꽃》을 발간했다.《진달래꽃》은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이다. 3·1 운동 이후 학교가 문을 닫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해 졸업했고,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지진이 발생해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 무렵 서울 청담동에서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영대》동인으로 활동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도왔으나 실패했고, 동아일보 지국마저 실패하면서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 그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술로 나날을 보냈다. 친척들로부터도 천시를 당했던 그는 일본의 압박으로 부인과 동반자살 기도까지 했다. 그는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다가 1934년 12월 24일에 평안북도에서 아편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우리에게 김소월은 일제 강점기 시인으로 민족 고유의 정서를 노래하는 시를 쓴 민족 시인으로 유명하다. 초기에는 민요조의 서정적인 어조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후기작《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라면》에서는 민족적 현실을 각성하고 참여하는 목소리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