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출제되었나. 수능 기출 출제순위 4위에 해당할 만큼 수능이 사랑한 작가다. 수능에는 《만무방》과 《동백꽃》이 출제되었고, ebs에는 최근 5년간 《금따는 콩밭》, 《동백꽃》, 《만무방》등 3개 이상의 작품이 수록되고 있다. 뒷 장 표를 참조하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삶과 작품경향. 김유정의 부모님은 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형의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기울었고, 여기저기 이사다니며 집은 급격히 가난해졌다. 김유정은 4년 동안 글방에 다니며 《천자문》, 《계몽편》, 《통감》 등을 배웠고, 초등학교에서 그의 성적은 우수했으며, 고등학교에서는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기도 했다. 김유정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형은 결국 가산을 모두 탕진했고, 형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보조받지 못하게 된 김유정은 삼촌집에 잠시 머무르다 곧 누나들과 형수의 집을 전전했고 이때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21세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유정은 이듬해 경성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두 달 만에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중퇴했다. 형에게 병치료와 생활비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하고 형을 상대로 재산 분배 소송을 내기 위해 춘천으로 낙향했지만, 춘천에서 김유정은 고향의 순박한 정취와 가난한 당시 농민들의 삶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춘천에서 보고 느꼈던 고향의 정취와 농민들의 곤궁한 생활,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은 그의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되었다. 등단한 해에 김유정은 대표작이라 불릴 작품 대부분을 발표했다. 「금 따는 콩밭」 · 「금」 · 「떡」 · 「만무방」 · 「산골」 · 「솟」 · 「봄봄」 · 「안해」 등 10편의 단편과 3편의 수필이 그가 등단한 바로 그 해에 쏟아져 나왔다. 김유정에게는 무수히 많은 원고 청탁이 쏟아져 들어왔고, 김유정도 약값을 벌기 위해 청탁이 들어오는 대로 글을 썼지만 그나마도 돈이 생기면 술값으로 써버리기 일쑤였다 1936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김유정은 형수가 사는 단칸방에 함께 살며 폐결핵이 더욱 악화되었다. 김유정은 죽기 열흘전까지도 방안에 커튼을 치고 촛불을 켜놓고 글을 썼는데, 친구 안회남 앞으로 남긴 「필승전」이라는 글에서 최후의 순간까지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있다. 1937년 3월 29일에 김유정은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30세였다. 김유정의 소설은 인물들의 가난하고 비참했던 삶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대사와 묘사를 통해 해학성있게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