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출제되었나. 수능 기출 출제순위 3위에 해당할 만큼 수능이 사랑한 작가다. 수능에 세 번 기출되었고, 최근 5년간 ebs에 다량의 작품이 매년 실리고 있다. 뒷 장 표를 참조하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삶과 작품경향.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충청북도에서 태어나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다녔다. 이때 박종화·홍사용·정백 등과 함께 다녔다.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펴냈으며, 신석우 등과 문우회(文友會) 활동에 참가하여 이병기·이일·이윤주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반일(半日)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다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으나 박종화·홍사용 등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다.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고, 1933년 이상(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다. 같은 해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여 문학 공개강좌 개최와 기관지〈시와 소설〉간행에 참여했다. 1939년에는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지고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 있게 되었는데, 인천 상륙 작전이 끝나고 대한민국 국군이 수복한 서울에서도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시인 정지용은 초기엔 모더니즘과 종교적성향의 시를 주로 발표하였고, 널리 알려진 작품 <향수>처럼 서정적이고 한국의 토속적인 이미지즘의 시를 발표하면서 그만의 시 세계를 평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