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는 신의 저울을 속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저울을 속이면 흑마법이고, 절대선을 수호하고자 저울을 속이면 백마법이라고 구분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마법사는 신을 속이거나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한 순간만큼은) 신의 영역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의지로 신의 섭리를 거스르거나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카드다. 이는 카드의 부정적 키워드(사기꾼)로 흡수된다. (15쪽)
여사제는 알려지지 않은 지혜를 가르쳐주는 카드다. 그 지혜와 지식은 성모 마리아의 성담聖譚과 같이 기록되지 않고 전해지며, 그 이야기 안에는 깨달음이라는 열매가 담겨 있다. 장막에 그려진 석류알은 ‘삶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 지혜’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지혜들이 정제된 정수(손에 들린 율법서)는 전수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나 그녀의 흔적(지혜와 지혜로운 행동의 결과)들이 상징의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난다. (26쪽)
교황은 전통과 교육을 뜻한다. 이 전통은 인간뿐만 아니라 신에게도 인정받은 권위로, 클래식 타로에서 이 카드의 인물이 전형적인 가톨릭교회의 교황Pope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교황 카드가 교육을 의미한다는 것은 유럽 문화의 전통적 관습에 기반한다. 근대 이전에 유럽 문화권에서는 대학을 제외한 모든 교육이 교회에서 이루어졌으며, 심지어 대학도 교회의 부수 연구기관으로 시작됐음을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카드의 중요한 의미인 교육은, 확고한 경전과 가르침을 기준으로 형성된 전통의 역할 가운데 하나라 볼 수 있다. 교황은 이 모든 것의 수장이자 대표자이며 통치자다. 따라서 교황은 전통의 수호자로서 다른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인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달리 보면, 그는 세속의 문제에 관해서는 철저히 닫혀 있으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교황은 확고한 지위임에도 금욕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세속의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을 타락하게 할 수 있음도 경고한다. (47쪽)
연인 카드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의사소통에 관한 모든 것, 연애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의사소통 전반을 뜻한다. 다만 의사소통의 가장 깊은 의미가 연애에서 가장 잘 구현될 뿐이다. 카드의 키워드는 의사소통의 궁극적 지향점이 연애 상태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교감 속에 있음을 암시한다. 연애와 더불어 이 카드의 가장 훌륭한 키워드가 예술의 창작과 감상으로, 이 또한 의사소통의 한 면을 보여준다. 궁극에 다다른 소통은 언어와 문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고 나아가 아무 말 없이 모두를 희열과 감동으로 이끈다. 수많은 매체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꼽는 예술 작품 하나하나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인류 보편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도 이 카드의 키워드에 정확히 해당한다. 따라서 이 카드는 예술 자체를 뜻하기도 하며, 카발라의 티페레트에 해당한다. (60쪽)
은둔자는 ‘숨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홀로 헤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가 헤매는 이유는 어떤 ‘뜻’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카드는 은둔자Hermit의 어원으로 볼 때 명백하게 종교적 기반이 있다. 시중에 알려진 그대로의 뜻으로는 상징 해석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이 책에서는 은둔자Hermit의 어원과 그림 속 상징 도상의 의미만 추적해 카드의 키워드 체계를 유추하고자 한다.
카드의 모든 키워드는 특수한 종교적 시기, 곧 파스카 성삼일의 마지막 밤인 부활성야Easter Vigil 가운데서 벌어지는 사건을 황금새벽회 특유의 신비주의로 표현했다. 또한, 부활성야의 특징 때문에 카드의 모든 키워드가 숨겨져 있다. 핵심 키워드인 ‘고난 속의 달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면 카드의 배경에 깔려 있는 부활성야의 특징을 이해해야 하며, 그림의 노인이 부활성야의 의식들을 실행하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카드의 키워드가 성립한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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