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없는 조막손 산악인 김홍빈 대장은 장애인 세계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 정상에 오른 불굴의 사나이다. 김홍빈 대장은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이어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중 이미 13좌를 오르고 마지막 하나 남은 브로드피크(8,047m) 정상을 밟기 위해 2021년 6월 14일 출국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7월 18일 오후 4시 58분(현지 시각) 브로드피크(8,047m)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김홍빈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완등 마침표를 찍고 하산 도중 해발 7,900m 부근에서 실종되었다는 비보에 온 국민의 환호는 순식간에 탄식으로 바뀌었다. 현지에서 헬기로 6차례나 수색했지만 끝내 김홍빈 대장을 찾지 못했다.
김홍빈 대장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됐지만 지구촌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별이 되어 그가 사랑하던 히말라야 품에 영원히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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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기업 청하연미디어 오준영 회장은 싱어송 라이터 가수이자 음원 수집가로 동서양을 망라한 ‘원석’ 같은 음원을 700만 곡이나 보유한 진기록의 주인공이다.
개인, 기관, 단체 심지어 국가가 나서도 쉽지 않은 ‘넘사벽’ 보유량으로 단연 세계 기네스감이다.
4월과 오월의 멤버로 활동했던 가수이자 음악프로듀서, 영화음악 작곡가, 음원콜렉터로 활동해온 1인다역의 ‘멀티 뮤지션’이다.
“한국 최초의 가수가 누구인 줄 아십니까? 1919년 6월 사의찬미를 부른 윤심덕입니다. 남자가수 김개똥의 노래를 어디에서 듣겠습니까? 제가 음악을 하니까 최소한 선배 뮤지션들이 무슨 음악을 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음원을 수집해왔습니다.”
작곡가 김희갑의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른 가수는 자그마치 171명이다. 그중에 저작권협회 승인을 받은 곡은 21곡뿐이다. 나머지 150곡은 협회 미등록으로 정확한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 소달구지 덜컹대던 길~ 시냇물이 흘러내리
던~ 시골길은 마음의 고향~~ 눈이 오나 바람 불어도~ 포근하게 나를
감싸는~ 나 어릴 때 친구 손잡고~ 노래하며 걷던 시골길~~ 아~ 지금도
~ 아~ 생각나~
오준영 씨가 작사 작곡하고 가수 임성훈 씨가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 시골길이다. 가사를 흥얼거리기만 해도 시골길은 이미 마음의 고향으로 다가온다.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듯 700만 곡을 수집한 그를 보면서 한눈 팔지 않고 우직한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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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를 운영하면서 지역 봉사활동을 습관처럼 하고, 시인, 수필가, 시니어 모델, 색소폰 연주, 작사가, 가수에 영화까지 찍었다. KBS 진품 명품에 출연했을 정도로 골동품, 미술품에도 관심이 많다.
차고 넘치는 감성을 글로 풀어내면 가슴을 파고드는 시와 수필이 되고, 심금을 울리는 노랫말 가사가 된다.
그는 등단 시인으로 ‘어머니 그리워 그리워’, ‘엄마의 노래’ 등 시집을 4권 냈다. 작사도 국민 가수 남진의 ‘모정’, 강진의 ‘족두리봉’, 서지오의 ‘오늘밤에’, 강유정의 ‘엄마의노래’ 등 30여 곡이나 했다. 송대관의 신곡 ‘덕분에’도 이영만 박사가 가사를 썼다. 1인 다역으로 하는 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의 본업은 치과의사다. 치과 진료가 최우선이다.
치과의사, 시인, 가수, 발명가, 작사가로 한 번뿐인 인생을 ‘폼’나게 사는 이영만 박사의 활동 영역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넓어지고 있다. 1958년생 이영만 박사는 영화(제목: 1958)까지 찍었다. 1958년 개띠 베이비붐 세대들의 희로애락과 꿈을 그린 영화로 2021년 10월 26일 시사회가 열렸고 곧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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