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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진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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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진의 쓸모

: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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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454g | 140*210*20mm
ISBN13 9791187572190
ISBN10 118757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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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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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은 왼손으로 한다.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일이면 더욱 그렇다. 예를 들자면 셔츠 단추 잠그는 일 같은 것 말이 다. 망가진 아이 장난감을 고치고, 화장실 배수구를 교체하는 일이 또 그렇다. --- p.11

나는 어떤 크고 화려한 장면을 찍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원체 느렸고, 자주 게을렀던 탓이 크다. 나는 그저 한 발짝 물러나서 관찰하거나 종종 용기를 내어 주목받지 못한 사소한 일을 묻고 적고 찍었을 따름이다. --- p.13

인터뷰였다. 얼마 전 자식 앞세운 사람에게 그 죽음을 다시 묻는 일이었다. 다행인지, 질문하는 건 나의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 뒤에 숨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나는 거기서 생각했다. 카메라를 좀 늦게 들었다. 조명 장비를 얼마간 챙겨 갔는데 꺼낼 생각을 접었다. 그저 바라보고 듣는 일을 한참 했다. 동기화라고 해야 할까, 감정을 끌어올리거나 낮추는 과정이었다. 감정이 넘쳐서도, 부족해서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예의를 갖추는 일이라고도 여겼다. 보자마자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건, 조명 세워 팡팡 터트리는 건 폭력적인 일이라고 느꼈다. --- p.59

천막에 사는 사람들 앞에 카메라 들이대는 건 좀 민망한 일이었다. 싸움 나선 사람이라도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가 신경 쓰이는 법이다. 구석으로 숨거나 얼굴 돌리는 사람이 꼭 있다. 빼고 찍거나 동의를 구한다. 실없는 농담을 건네는 법을 배워야 했다. 눈 맞춰 질문하고 얘기를 듣는 기술도 익혀야했다. 무엇보다도 거기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해야 했다. --- p.93

점거 농성 진압 작전은 주로 새벽에 이뤄지곤 했다. 농성자의 집중력도 떨어지고, 따라붙는 카메라를 피하기에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언젠가 평택 미군 기지 확장을 반대하며 대추분교에서 농성하던 주민들을 진압했던 작전 이름도 ‘여명의 황새울’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기다린 사람만이 그 장면을 사진에 기록한다. 그 시간에 거기 있어야 한다는 건 사진기 든 사람의 숙명이다. 나는 자주 게을렀다. 마음에 빚만 잔뜩 지고 산다. --- p.123

일하는 사람 앞에 두고 번쩍번쩍 불 밝히려니 그것도 좀 민망한 일이었다. 뻔뻔함을 여태 익히지 못해 매번 힘들다. 땀을 찍는 건 카메라 든 사람도 땀 흘릴 일이다. 더운 데서 같이 땀 흘리니 묘한 연대감 따위가 생기기도 했다. --- p.38

하나같이 지켜보기 힘든 장면이 매일같이 반복됐다. 나는 지옥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다른 단어를 찾기도 어려웠다. 이곳이 지옥이구나 싶었다. 나는 무슨 사진을 더 찍고, 어떤 말을 보태야 할지를 알 수 없어 자주 멍하니 섰다. 정신 붙들어 잡고, 몸에 밴 뻔한 사진 공식대로 피사체를 따라붙었다. 경찰 사이에 끼어 이리저리 흔들리는 동안 초점 잃은 사진이 누군가의 손과 뒤통수, 다리를 기록했다. 그중에는 세차게 흔들리는 학생증도 있었다. 망친 사진이고 쓸 수도 없었지만 지울 수가 없어 그냥 뒀다. 경찰에 둘러싸여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가 꺽꺽 울며 말을 토했다. 고개를 꺾어 우는데, 뒤로 보이는 태극기가 눈에 밟혔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당시에 많았다. 빨갱이 선동꾼을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며 태극기 흔들며 목소리 높이는 어버이들이 또한 거기에 많았다. 언젠가 지옥도를 그려야 할 일이 있다면 나는 그 장면들을 떠올릴 것 같다. --- p.45

거기 모두들 기뻐 웃는데, 그 순간 카메라 든 사람들 표정만 잔뜩 찌그러진다. 뭐라도 하나 제대로 찍어야겠다고 마음이 바쁘다. 집중하느라, 한쪽 눈을 질끈 감느라 더욱 그렇다. 관찰자의 팔자다. 결정적인 순간이란 게 있다면, 항상 카메라 들고 잔뜩 찡그린 채 그때를 맞이한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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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 못한 모든 현장에 정기훈 기자가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던 많은 것들을 정기훈 작가는 탁월한 시선으로 잡아냈다. 단식 농성하는 노동자 얼굴에 패인 잔주름을… 탄압받는 남편의 회사 정문 앞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엄마의 손길을… 거리의 신부로 살아온 어르신의 손을… 서로 굳게 잡은 노동자의 손과 팔뚝을… 현장 곳곳에 남겨진 노동자 손길의 흔적을… 108배 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을 나는 정기훈 작가의 사진을 통해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사진뿐 아니라 그들 사이에 오간 가슴 저미는 대화들이나 통계 속 숫자에 묻혀버릴 뻔했던 사실들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을 보는 것으로, 그리고 그가 친히 쓴 설명을 꼼꼼히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 부채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우리들의 소중한 ‘미시사’를 기록해준 정기훈 작가에게 고맙다.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정기훈이 사진기를 들고 섰던 그 자리는 대개 아우성의 시공간이었다. 고함과 절규와 항의의 뒤섞임 속에서 내가 본 기훈은 조용히, 슬쩍 움직여가며 셔터의 단추를 눌러댔다. 그런 자리에서 셔터가 내는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 사진기 뒤에 얼굴을 붙인 채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지손가락을 누르는 자에게 찰칵 소리는 작을 수가 없다. 어떤 측면에서 사진 찍는 일은 계속 소리를 듣는 일이다. 사진은 소리를 담지 않지만, 어떤 사진들은 소리를 생각게 한다.
- 노순택 (사진가)
정기훈은 늘 남다른 솜씨로 꽃을 틔운다. 머문 자리 자체가 척박하고 처절한 토양일 뿐인데도 탁월하게 틔워낸 그의 꽃들은 예외 없이 경탄스러울 만한 자태를 품는다. 콜텍, KTX, 쌍용차 등 해고 노동자의 단식 농성장, 광화문 세월호 천막, 일본대사관 등등 그가 주시한 토양들이 대게 그렇다. 그럼에도 그가 틔워낸 모든 꽃은 메마른 아스팔트를 촉촉이 만드는 살 내음으로 가득하다. 때론 아픔이 웃음으로, 때론 웃음이 아픔으로 승화된 그 향기는 오롯이 보는 이들의 시선마저 끌어안는다. 그래서 정기훈이 피우는 모든 꽃은 사람꽃이요, 사진이 아니다. 그의 통찰력 깊은 솜씨로 틔운 사람꽃 모두가 내 가슴에 오롯이 채워지고 있다. 정기훈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임종진 (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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