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은 기원전 247년에 태어났다. 그의 마을인 중양 리에 노盧라고 하는 성姓의 집이 있었다. 노가의 주인과 유방의 아버지는 극히 사이가 좋았고 우연히도 유방이 태어난 날에 노씨 집에서도 사내애가 태어났다. “사이좋은 친구끼리 같은 날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라는 것만으로도 한가로운 중양 리에서는 큰 화제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뻐서 제사 때처럼 모여들어 축하하는 뜻에서 염소 고기와 술을 양가兩家에 가져와 크게 마시고 먹었다. 말하자면 서로 모여서 먹고 마시고 싶어 하는 것이 중양 리의 분위기였다. --- 「초한지 1 대란의 서곡」중에서
항우는 고지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이 사나이도 생(生)을 잊고 있는 것은 부하 초병과 다름이 없었다. 항우도 여느 사람과 다름없었다. 또한 항우도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계산할 줄은 알았다. 이 싸움에 대해서는 ‘내가 죽으면 그만이다.’ 그런 각오가 되어 있었다. 제아무리 항우라 할지라도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이 사나이는 그런 계산과는 다른 차원에서 호흡을 하고 있었다. 항우는 이 싸움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귀신이 뛰쳐나와 광기를 띠면서 진병과 맞서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의미라면 진짜 항우는 이미 죽었고 귀신만이 앞에 나와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본체는 이미 죽고 없었기 때문에 바람이 온몸을 스쳐가는 듯한 기분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황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이윽고 그는 움직였다. ---「초한지 2 항우와 유방」중에서
그중에서도 신참인 한신은 기가 막혔다. 천하를 주름잡는 초군을 마다하고 온 꼴이 스스로 우스웠다. 더욱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고 소하에게 소개받은 직책이 겨우 연오連敖라고 하는 본영의 잡역직이 아닌가. 연오는 백 명 정도가 있었다. 언젠가 한신은 그들 수십 명과 공모해서 본영에서 술과 안주를 훔쳐다 먹었다. 술 생각이 나서가 아니라 취하고 싶도록 상심이 컸다.한신은 동료들과 함께 군령을 어긴 죄로 참수형을 받게 됐다. 목을 벨 때는 중국 대륙의 관습대로 대중이 보는 가운데서 한다. 물론 유방이 친히 국문을 한다. ‘저 자가 유방이란 말이지.’ 한신은 오랏줄에 묶여서 유방을 쳐다봤다. 직무상 여러 차례 그를 봐 왔지만, 오늘같이 멍청이처럼 보인 때가 없었다. 한신은 제 뜻과는 달라진 운명, 즉 한중으로 가서 평생을 촌뜨기 하급 관리 노릇을 하게 될 바에야 이대로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신은 제 목숨에 집착하지 않았다. ---「초한지 3 선견지명의 책사, 장량」중에서
밤에, 유방은 도망을 쳤다. 유월 그믐날이었다. 어젯밤부터 비가 하늘의 별을 가리고 있었다. ‘몇 번째인가.’ 생각하면서 그는 도망 길을 걸었다. 일찍이 팽성의 대패전으로 도망을 쳤을 때는 수레를 탔다. 그때 말을 몰던 하후영(夏候?)이 두 마리 말의 볼기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채찍질을 했다. 수레 위에 유방의 아들과 딸이 함께 타고 있었다. 유방은 수레를 가볍게 하려고 몇 번이나 아들과 딸을 떠밀어 떨어뜨리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하후영이 주워 태웠다. ‘그 후 도망친 일이 몇 번이던가.’ 언제나 도망 길의 수레바퀴는 불이 나도록 굴렀으나 이번만은 도보로 도망을 쳤다. 항우의 군사가 서쪽에서 활발히 움직여 성고성(成?城)을 포위하고 유방을 잡으려고 했다. 어둠 속에서 가닥나무를 봐도 초군으로 생각돼 질겁했다. 그는 수레 소리를 내는 것조차 겁이 났던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은 하후영밖에 없다. ---「초한지 4 전략전술의 영웅, 한신」중에서
들에는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철수하던 날 아침 초군은 오랫동안 놓고 있던 화톳불을 발로 비벼 껐다. 화톳불 연기가 들에 가득히 퍼졌다. 이윽고 그 연기도 사라지고 소대별로 거리에 나섰다. 그들을 쉬게 하고 식량을 공급해 줄 팽성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었다. “급히 서둘지 말라.” 항우는 급히 행군하지 말도록 선두에 명령했다. 등 뒤에 있는 고릉성의 적이 성문을 열고 언제 추격해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방은 항우를 쫓지 않았다. 추격하면 야전이 되고, 야전이 되면 항우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항우는 유방이 추격해 오길 기다렸다. 유방이 따라오면 철퇴를 내려 지금까지 꾸며온 그의 모사를 한꺼번에 박살을 내려고 했다. ‘어쨌든 유방 하나만 잡으면 된다. 모든 일은 그것으로 끝난다.’ 항우는 멀어져 가는 고릉성을 자꾸 뒤돌아보며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