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17 1004] 언뜻 보기에는 의미 없는 단순 숫자의 나열 같지만, 앞의 38317은 삐삐를 돌려서 거꾸로 보면 사랑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LIEBE’로 보이고 뒤의 1004는 천사를 뜻한다. 효정이 보낸 메시지였다. ‘쩝. 옛날에는 이게 그렇게 부러웠는데. 이것도 자주 하니 이제 슬슬 지겹네.’ 회귀 전, 일식은 굳이 오덕후가 아니었더라도 남중-남고-공대라는 정통 마법사의 길을 걸어 연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90년대에 무선호출기가 폭발적으로 보급되자 연애질을 하는 커플은 무선호출기를 이용해 서로에게 38317 1004를 찍어 사랑을 속삭였다. 솔로부대원인 일식은 커플들의 염장질에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9서클 대마법사를 향해 용맹정진하는 일식에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식은 삐삐로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을 보며 남몰래 숨어 열등감을 폭발시켰다. 그는 회귀할 때까지 연애를 한 번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채 오로지 글과 텔레비전 영상으로 간접 체험을 했다. 회귀 후, 그는 회귀 전의 삶을 반복할 수는 없다고 처절하게 외쳤다. “힘들었지…….” 때문에 그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쓰인 기술들을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연애질에 써 먹으려 했다. 이동통신의 보급은 그런 일식의 집념이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업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