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일주일 동안 내 도시락을 싸주지 않겠어? 이 정도 도시락으로도 괜찮으니까.
물론 사례는 할 거야. 내 일주일 점심 코스와 바꾸기 놀이를 하자고.
어때? 아침에 너는 내 책상 서랍에 도시락을 넣는 거야.
나는 점심값과 가게 지도와 주문 메뉴를 쓴 종이를 너한테 줄 테니까.
다른 사원에게는 말하기 없기야.”
가타부타 입을 떼지 못하게 하는 어조는 거의 명령이다. 점심 바꾸기 놀이라는 것이 왜 ‘사례’인 걸까? 일이 어쩌다 이렇게 귀찮게 돼버린 거지. 울고 싶어졌다.
--- p.13~15
“오늘은 김 도시락이에요. 반찬은 고구마 레몬 조림에 달걀말이, 돼지고기 생강구이와 차조기 절임입니다. 어젯밤부터 점심시간이 기대됐어요. 오늘은 어떤 메뉴일까 하고. 날마다 구로카와 부장님의 보물을 조금씩 나눠 받는 것 같아서…….”
--- p.40
“우와, 예뻐라.”
초밥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훌륭하게 기름이 오른 주토로, 반짝반짝 루비처럼 빛나는 성게알 군함말이, 밥알이 투명하게 보이는 흰살생선, 통통하고 하얀 오징어…….
초밥은 한참 동안 먹지 못했다. 아버지 장례식 때 먹은 배달 초밥이 마지막이었나. 그때는 슬픔으로 맛도 잘 몰랐다.
--- p.45
타인의 요구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노라고 거절하기 전에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다.
--- p.59
“회사는 언제든 그만두겠습니다! 요리는 특기고, 운전면허도 있습니다. 앗코 씨와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저 뭐든지 하겠습니다.”
책임을 내팽개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후련함이 그걸 이겼다. 그런 골치아픈 인간관계 지긋지긋하다. 앗코 씨는 체념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 p.76
“저기, 이런 새벽에 포토푀를 사 먹는 손님이 정말 있어요?”
“너, 세상 사람이 전부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잔다고 생각해? 다들 너처럼 9시부터 6시까지의 타임스케줄로 일한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 p.82
“알 것 같네. 여자들끼리는 종종 험악해지는 법이죠. 그럴 때는 얘기 흐름에 맞추지 말고, 자기가 화제를 뿌리면 돼요. 내 쪽에서 제공하는 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관계가 편해져요. 사소하고 시시한 화제여도 상관없으니까.”
자신이 화제를 제공한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 p.88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심야에 혼자 식사하는 일이 적지 않지만, 요즘은 되도록 모두와 함께 따뜻한 음식을 꼭꼭 씹어서 먹으려 하고 있어요. 포토푀가 딱이죠. 먹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 p.102
“설마 정말로 5일 동안 계속 따라다닐 줄이야. 게다가 본 것, 들은 것, 전부 자신의 양식으로 만들고. 그런 진지함이 있으면 어떤 회사에서도 싸워나갈 수 있을 거야. 너도 생긴 건 얌전하게 생겼는데 참 재미있는 아이야. 정말로 질리지 않아.”
--- p.125
“저기, 이 근처에서 여고생 혹시 못 보셨어요? 진짜 교복 입은 여고생.”
“뭐어? 여고생? 뭐야, 이 아줌마는.”
아줌마라는 말이 가슴을 쿡 찔렀다. 클럽 순례를 하며 밤에 놀러 다니는 것을 그만둔 것도, 어린 소녀에게 교양 있게 대한 것도, 유행을 따르면서도 심플하게 입도록 주의하고, 튀는 옷을 피한 것은 오로지 이 말을 듣는 게 무서워서였다.
--- p.149
“요즘 학생들은 별로 밤에 놀러 다니지 않아서 하마자키 같은 아이는 드물어.”
“그래요?”
“응, 너희 때하고 좀 사정이 달라. 요즘 교실에서 주목을 받거나 눈에 띄는 애들은 공부도 잘하고, 부모나 교사와도 잘 지내고 다른 아이들하고도 격의 없이 지내는 바람직한 애들이 많아.”
--- p.157
지금은 10대까지 보수적이 되었다.
회사며 미팅이, 아니, 나라 전체가 시시해진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지인 중에서 여고생과 연대가 가장 가까운 미카의 태도를 떠올렸다. 그녀에게도 그런 면이 있다. 일도, 인간관계도 실수없이 누구하고나 원만하게 지내려는 자세가 보인다. 젊음에 대한 질투를 제외하고라도 답답해 보일 때가 있다.
--- p.158
“조노 샘도 친구들도 제가 가장 잘나갔던……, 빛났던 시절을 알고 있으니까……. 그 뭐랄까, 지금의 저는…….”
왠지 선생님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빛났던? 네가? 그 게으르고 시끄럽고 어른들 골탕 먹이던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이 훨씬 나아.”
---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