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주는 눈을 깜빡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그녀를 보게 되다니,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정말, 그녀인가?’
의혹이 피어올랐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모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자신이 아는 여자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여자는 저렇게 키가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는 다시 세심하게 매장 속 여자 모델을 꼼꼼히 살펴봤다. 매장 직원이 자신을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지켜보고 서 있자니 드디어 여자 모델이 살짝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혁주는 가만히 숨을 토해 내며 그녀가 자신을 보기를, 정면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천천히, 여자의 얼굴이 움직였다.
“아!”
저도 모르게 낮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분명, 그녀였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도 기억나는 얼굴,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
하지만 여전히 혁주의 얼굴에는 믿기 힘든 표정이 남아 있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바로 코앞에서 보이는 저 여자가 과연 그녀가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매장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밖에서 한참 동안 안을 들여다보던 혁주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여직원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는 매장의 이곳저곳에 시선은 주었다. 그러나 그의 신경은 온통 마네킹 역할을 하고 있는 여자에게로 쏠려 있었다.
“선물하시게요?”
여성 의류 매장에 혼자 들어서는 남자란 대개 선물하기 위해 들어오기에 여직원은 상냥하게 물었다.
“여자 친구분께 선물하시는 거죠?”
젊은 여성 취향의 매장이었다. 여직원은 혁주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열심히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올봄엔 노란색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여자 친구분 키가 어떻게 되세요? 날씬한 편이세요?”
여직원의 물음에 혁주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어떠세요?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이에요. 이건 색감도 좋고 소재도 좋아서 잘나가고 있는 카디건인데.”
이것저것 권하는 직원의 말에 그는 대충 눈으로 옷들을 훑었다.
“아, 그건 격식이 있는 자리에 입고 나가도 좋을 스타일이에요.”
혁주가 옷걸이에 걸린 옷을 매만질 때마다 직원은 나서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분 나이 대가 이십 대 초반? 중반?”
매장 직원은 집요했다. 혁주는 그녀를 따돌리는 대신 더더욱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마네킹, 그녀에게 다가가기 몇 발자국 전.
“아까부터 봤는데.”
문득 걸음을 멈춘 혁주는 빙글, 몸을 돌려 자신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여직원을 내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네, 손님.”
“저 옷.”
살짝 몸을 돌린 그가 기다란 손가락 끝으로 정확히 목표를 가리켰다.
“저 옷이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 저 옷이요?”
여직원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떠올렸다.
“저 원피스가 화사하니 봄에 입기 정말 좋죠. 여자 친구분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혁주는 손가락을 내리고 꼼꼼한 눈으로 마네킹 모델을 훑었다.
“저 사이즈가 딱 맞군요.”
“아아.”
여직원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섰다. 그가 뒤돌아서는 여직원을 잡았다.
“저 옷 주십시오.”
“아, 네, 손님, 사이즈 찾아다 드릴게요.”
여직원은 상냥했다.
“저 마네킹 모델 사이즈가 딱입니다.”
“네, 그러니까 같은 사이즈를…….”
“저 모델이 입고 있는 옷, 목걸이, 구두, 다 주십시오.”
“……네?”
주근깨가 가득한 여직원의 얼굴에 황당함이 걸렸다.
“지금 저 모델이 입고 걸치고 있는 걸 사겠다는 말입니다. 저 모습 그대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