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 성심여자중고등학교를 나와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생활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독일로 유학, 쾰른대학에서 동양미술사를 공부하였다. 유학중 15년 연하인 독일인 에버하르트 우어번과 결혼, 부부학생 생활을 겪었다. 여섯 살의 딸 하나를 두고 있는 주부 조각가로 현재 라인강변에 '인애조소 갤러리'를 오픈하여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있으며, 1998년 독일 자쯔바이성에서 '제 1회 인애 조소전'을, 1999년 독일 쾰른 시청 특별전시관에서 '제2 회 인애 조소전'을 개최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독일어로 결혼은 호흐짜이트(Hochzeit : 높은 시간)라고 한다. 호흐(hoch)는 '높다', 짜이트(zeit)는 '시간'으로, 결혼의 의미를 독일인들은 그 사람의 '생애의 높은 시간'이라고 하였다.
한국의 결혼은 두 사람이 결합하는 일심동체를 표명해 한 쌍의 남녀를 하나로 보려 한다. 그래서 부인은 남편의 소유로, 남편은 부인의 소유로 취급된다. 이에 비해 독일의 결혼은 개인주의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어처럼 각각의 당사자들에게 가장 높은 시간일지언정 서로가 서로의 개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에버하르트의 대학 친구 미하엘은 이른 나이에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은 후 이혼했다. 그의 옛 부인이 이혼 재판에서 지시한 대로 세 살 짜리 아들을 맡아 기른다. 미하엘은 정해진 날에 옛 부인 집으로 아들을 보러 간다. 가끔은 아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기도 한다. 어느 날 미하엘은 아들을 보러 가는 날이라며 손에 장난감을 든 채 기뻐하고 있었다.
"미하엘, 너희들이 이혼한 이유가 무엇이었니?" "이유? 나도 몰라. 아내가 이혼을 제기해서 한 것 뿐이야." 한국적 사고에서 생각할 때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었다. "이혼을 하면서 상대가 왜 이혼을 하려는지 원인을 모르다니?"
독일인들의 철저한 개인주의는 실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에버하르트는 나의 이름으로 온 편지는 절대 뜯지 않는다. 2,3주씩 집을 비울 때조차 편지들은 봉해진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편지 속의 내용이 급히 처리해야 할 것일 때는 더러 불편을 겪기도 한다. "에버하르트, 내가 오래 집에 없을 때는 나에게 온 개인 편지를 제외하고 다른 편지는 다 뜯어봐." 그는 그저 '아니'라고 대답한다.
큰일에서 아주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것도 그는 반드시 나의 의견을 듣고 일을 처리한다. 가끔은 짜증스럽기조차 한 독일인들의 개인주의. 하지만 상대를 그만큼 존중하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