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적으로 과감하다. 하지만 예술적으로 간결하여 주의를 분산시키는 프레스코화나 묘가 없고 뒷목 뻐근하게 올려봐야 할 높은 천장도 없다. 잇따라 서 있는 기둥들이 펼치는 현란한 기하학,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그림자와 함께 교차하며 엮는 무늬가 전부이다. 평온함이 내려앉은 이 넓은 공간은 정신이 육체의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생각과 기도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영적 오아시스이다….
‘메스키타’는 스페인어로 ‘모스크’, 즉 이슬람 사원을 뜻한다. 그렇지만 안달루시아 지방의 코르도바시에 위치한 이 파격적인 건축물은 한 단어로 정의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복합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자 여러 종교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례이다. -메스키타
--- p.20~21
이 거인 같은 존재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지친 순례자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긴 시간 터벅터벅 산 넘고 물 건너 모래갯벌까지 지나온 마음이 얼마나 벅차올랐을까. 제아무리 월트 디즈니라 해도 시각적으로 이보다 더 동화 같은 축제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노출된 암석 위에 거대한 수도원과 하늘을 꿰뚫는 첨탑이 우뚝 솟아 있고 밑자락에는 목재와 돌을 반씩 섞어 지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섬 주변을 에워싼 모래 점토질의 갯벌은 하루 두 번 조수간만의 차가 크게 일어 문명과의 접촉을 차단한다. 물질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의 구분, 인간 세계와 영적 세계의 경계다…. -몽생미셸
--- p.44~45
평화, 기도, 믿음, 희망, 작은 샘물의 재잘거림…. 이 모두가 붐비는 동굴 주변을 에워싸며 메아리친다.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지만 서로 밀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낮의 밝은 빛에서 어두운 틈 속으로 한 걸음씩 움직이는 줄에 압도적인 고요함만 맴돌 뿐이다.
모인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눈을 살짝 감은 채 손가락 사이로 묵주를 돌리는 사람, 이미 수천, 아니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으로 차가운 암벽을 매만지는 사람도 있다. 양초나 셀카봉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중얼거리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신성한 동굴의 벽감에 자리한 성모 마리아 대리석상이 아래를 응시하고 있다. 100여 년 전 성모 마리아가 한 어린 소녀에게 발현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루르드
--- p.52~54
올림포스는 신화 속에서 권력과 권위의 은유적 표현으로 처음 등장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도 실제 위치에 대한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중에 한 특정한 봉우리에 그 이름(‘빛나는 것’이라는 뜻)이 붙었다. 날이 맑으면 그리스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에서 보이는 이 거대한 산이 신의 거처로 유력한 후보지가 되었다. 올림포스처럼 큰 산들은 신과 유사한 면이 많다.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고, 힘들이지 않고 영성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수 세기 동안 울퉁불퉁한 산허리는 박해, 사회, 갈등 및 법망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도피처가 되었다. 산속 동굴과 숲은 은둔자들의 은신처였다. 사람들은 신성한 수풀과 제일 높은 꼭대기에 희생양과 제물을 바쳤다. -올림포스산
--- p.68
공기 중에는 각종 향신료, 종교의식용 향, 빵 굽는 냄새와 오래 묵은 먼지가 가득하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미나렛에서의 외침이 교회 종소리, 유대인의 성인식인 바르 미츠바 축하 소리 및 여러 나라 말소리와 뒤섞인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기도한다. 예루살렘은 각기 다른 종교에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도시인데 종교를 떠나서도 그렇다. 정치적 화약고이면서 동시에 기도의 집약체이다. 순례자들은 각기 다른 교리를 따라 오지만, 이곳에는 똑같이 이끌리는 것이 있다…. -성전산과 구 예루살렘
--- p.78~79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 성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교 유적이 또 있겠는가. 쉐다곤 파고다(쉐다곤 파야)의 중앙 첨탑을 덮은 금은보화의 반짝임이 뜨겁고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다. 마치 크리스마스 전구 수천 개를 켜놓은 것 같다. 언덕 위의 이 풍경은 수 킬로미터 밖, 심지어 우주 밖에서도 보일 것 같다.
그런데 무얼 위해 이렇게까지 화려한 것일까? 탑 아래에는 붓다인 고타마 싯다르타의 머리카락 여덟 가닥이 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함이 묻혀 있다. 무엇보다 고귀한 보물을 경배하기 위한 소중한 유적이다. 미얀마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쉐다곤 파고다
92
강물은 아주 먼 길을 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의 얼음 고원에서 출발해 녹음이 우거진 언덕, 소들이 일군 농지, 작은 마을, 북적이는 순례 중심지를 지나 푹푹 찌는 인도 평원까지 흘러왔다. 그리고 드디어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한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빛의 도시 바라나시는 파괴와 재생의 신 시바가 세웠다고 한다. 독실한 힌두교도들은 갠지스의 성수가 자신의 죄를 씻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몸을 씻으러 온다. 순수한 염원은 더욱 순수해지고 불순한 염원은 순수함을 얻는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바라나시와 갠지스강
--- p.104
테오티우아칸, 신들의 탄생지. 아즈텍족이 멕시코 밸리에 오랫동안 방치된 신비한 도시를 발견하고서 붙인 이름이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테오티우아칸의 범상치 않은 규모에 빠져들다 보면 완전히 생뚱맞게 지은 이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달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른다. 왼편으로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가 보이고 정면으로는 쭉 뻗은 ‘죽은 자의 길’이 뙤약볕의 아지랑이에 아른거린다. 경외심이 든다. 높은 곳에 서니 도시의 큰 규모 때문에 길게 줄지어 올라오는 관광객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개미 같아 보인다. 그런데 지금 시야에 들어오는 것도 원래 부지의 일부일 뿐이다. 도로, 광장 및 사원을 기하학적으로 아주 정밀하게 배치한 고대 도시계획에 찬사가 나온다. 아울러 테오티우아칸이 신을 얼마나 갈망하는 곳이었는지 공감이 간다. -테오티우아간
--- p.168~170
이렇게 청아한 푸른빛을 본 적 있는가. 청록색 하늘과 맞닿은 푸른 호수, 영롱한 사파이어 빛깔에 눈이 시리다. 몇 마리의 작은 새들이 자라다 만 나무 사이를 날쌔게 오가며 짹짹거린다. 밝은 모직 모자를 쓴 남자가 젓는 토르토라 갈대 배가 한가로이 지나간다. 풀이 무성한 산비탈과 계단식 밭이 호숫가까지 내려오고,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은 하늘 높이 입맞춤한다. 숨이 차오른다. 고도가 높아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놀라운 광경에 숨이 턱 막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창조가 일어나는 바로 그 가마솥을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일 수도…. -티티카카 호수
--- p.186~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