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의 연대기는 우여곡절, 파란만장 그 자체다. 황석영의 삶은 무시무시하고 매혹적인 사건들과의 원체험적이고 외설적인 조우의 연속이다. 그는 한국전쟁, 4·19, 가출 혹은 출가, 베트남 파병, 80년 광주, 방북, 망명, 구속, 촛불혁명 등등 단언컨대 절대 그 이전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세기적 사건을 거듭거듭 경험하거니와, 이 스펙터클 때문에 우리는 종종 ‘모든 황석영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은 그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에 직면하곤 한다. 하지만 이 유혹은 그의 삶보다도 더 위대한 그의 작품을 만나는 순간 곧 스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황석영의 소설에는 그 초기작부터 세기적 사건의 현장에 임재했던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실감나는 묘사와 그 탈존적 존재만이 행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성찰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해서 196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항상 상상했던 것 이상의 새로운 영토들을 거듭 등재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사의 현장이라면 그 어디라도 달려갔던 황석영의 실재적 경험에 힘입은 바 크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 류보선 (문학평론가)
황석영의 소설은 어느 것이나 그 배후에 불길이 어른거린다. 그 불길은 시대의 참상과 무죄한 사람들의 희생에 대한 아픈 분노의 불길이자 혁명과 유토피아로 상징되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타는 듯한 열망의 불길이다. 그 불길은 그러나 섣불리 바깥을 향해 번져가며 즉각적인 화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내연하며 오래도록 타오르는 은근함 또한 갖추고 있다. 황석영의 밀도 높은 문장과 풍부한 장면 묘사, 견고한 구성 등은 바로 이러한 생생한 원체험의 불길을 다스리고 갈무리함으로써 얻어진, 오랜 수련과 탐구의 결정체이다.
- 남진우 (시인, 문학평론가)
황석영은 1970~80년대에 발표한 뛰어난 리얼리즘 소설들로 ‘한국문학사’의 한 챕터를 완성하였고, 1989년에는 방북하여 ‘북한문학사’의 현장을 끌어안았으며, 1998년의 석방 이후 글쓰기로 복귀한 뒤에는 원숙한 장편소설을 쓰고 여러 나라에 번역 출간하여 ‘세계문학사’에 참여하고 있다. 개인과 문학과 공동체, 한 사람이 세 층위의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다보니 남한과 북한과 세계를 다 살아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일을 한 한국 작가는 지금까지도 한 사람뿐이다. 그의 중단편은 당대의 평자와 독자들이 훗날의 거장을 예감하면서 품었던 ‘거대한 기대’의 유적지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탐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들에 대한 선구적 천착이 마련해놓은 ‘위대한 유산’의 공간이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
불이 붙은 남포를 입에 문 채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고 “텅 비어버린 듯한 마음”으로 다짐하던 「객지」의 부랑 건설노동자 동혁을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전태일이 점화한 197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전혀 새로운 국면에서 마치 호응하듯 황석영이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돼지꿈」 등 일련의 작품으로 그려내고 열어젖힌 민중 현실의 생생한 모습과 포괄적 인간 진실의 힘은 문학의 울타리를 넘어 저항과 변혁의 은밀한 심지가 되어 타올랐다. 한국문학사 전체를 돌아보아도 바로 이 순간만큼 문학과 세상이 서로를 가깝고 간절하게 부르고 껴안으면서 역사의 설레는 방향성을 이룬 때는 없었으리라. 떠도는 땅으로서의 ‘객지’는 그렇게 추위와 서러움을 이기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추는 창공의 성좌가 되고 있었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황석영이 자신을 가리켜 ‘두 가지 종류의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이야기할 때, 이 진술은 의미심장하다. 우선 그는 “차가운 머리로 구성하고 직조해서 꽉 짜인 플롯”을 만들어낼 줄 아는 작가다. 「객지」를 보라. 한국 근대소설의 한 정전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어머니에게서 듣거나 유년기에 경험했던 내밀한 이야깃거리를 가슴속에서 퍼”내는 데 능하기도 하다. 「한씨연대기」는 이 세계에 속한다. 이음매가 없는 간결한 이야기들은 「한씨연대기」에서 발원해 『모랫말 아이들』을 거쳐 『바리데기』에서 그 유장한 흐름의 일단을 마무리한다. 근대소설의 협소한 틀을 넘어서고자 하는 동아시아 작가의 고투가 물수제비뜨듯 날아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 신수정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