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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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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 기적

반칠환 | 지혜 | 2020년 07월 0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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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0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246g | 142*218*11mm
ISBN13 9791157284030
ISBN10 115728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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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새해 첫 기적」 중에서

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
--- 「노랑제비꽃」 중에서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 「웃음의 힘」 중에서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 「봄」 중에서

쭈글쭈글 탱글탱글/ 한 손에 두 개가 다 잡히네?/ 수줍은 새댁이 양볼에 불을 지핀다/ 호두과자는 정말 호두를 빼닮았다// 호두나무 가로수하 칠십 년 기찻길/ 칙칙폭폭, 덜렁덜렁/ 호두과자 먹다 보면 먼 길도 가까웁다
--- 「호두과자」 중에서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미쳐 진흙으로 대포를 만들고/ 도토리로 대포알을 만드는 전쟁광들이 사는 마을/ 줄줄이 새끼줄에 묶인 흙인형 포로들을/ 자동콩소총으로 쏘아 진흙밭에 빠트리면 무참히 녹아 사라지고/ 다시 그 흙으로 빚은 전투기들이/ 우타타타 해바라기씨 폭탄을 투하하고/ 민들레, 박주가리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면 온 마을이/ 어쩔 수 없이 노랗게 꽃 피는 전쟁터/ 논두렁 밭두렁마다 줄맞춰 매설한 콩깍지 지뢰들이 픽픽 터지고/ 철모르는 아이들이 콩알을 줍다가 미끄러지는 곳/ 아서라, 맨발로 달려간 할미꽃들이 백기를 들면/ 흐뭇한 얼굴로 흙전차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는/ 무서운 전쟁광들이 서너 너댓 명 사는,/ 작은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 「전쟁광 보호구역」 중에서

수족관 장어들이 날렵하게 꿈틀거린다/ 평생 한 일 자 일획만 긋던 놈들이다// 이제 일획도 너무 길어/ 탁, 탁, 탁/ 점으로 돌아가리라 한다// 마침내 붓마저 버려야 얻는/ 절체절명의 도마필법을 얻으리라/ 저마다 설레어 웅성꿈틀거린다// 저들이 써 온 일필휘지의 서첩은/ 고스란히 물 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강물에 강물을 찍어서 썼다고 한다/ 새들이 허공에 허공을 찍어/ 온몸으로 일획을 남기고 가듯
--- 「장어」 중에서

침몰해가는 배에서 침몰하는 배에 관한 영화를 보는 스릴을 아느냐/ 불치의 병상에 누워 불치의 아이가 죽어가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느냐/ 침몰하고 있는 배를 구명정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철썩, 안심하고 가라앉는 종교를 보았느냐/ 새순 같은, 고갱이 같은, 눈사람 같은 아가들아,/ 네가 타고 있는 별이 숯이 되어 식고 있는 걸 아느냐
--- 「우리들의 타이타닉 - 속도에 대한 명상 7」 중에서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속도에 대한 명상 1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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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광화문글판’에 ‘겨울편’ 글귀가 내걸렸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는 글귀는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 기적’에서 따왔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도와주며 새로운 출발을 위해 모인 것이 기적임을 유머러스하고 역동적으로 표현한 시”라며 “새해를 맞아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는 뜻에서 이 글귀를 선정했다”고 전했다.
- 이상훈 (언론인)
[봄]
여섯 행밖에 되지 않는 시에서 시인은 봄-요리사, 싹과 꽃-냉동 재료, 봄 풍경-맛난 음식으로 병치시키며 아름다운 봄 풍경을 참 멋지게 그려놓았다. 특히 마지막 행,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에 와서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봄을 지내왔는데, 봄이면 산과 들에서 아름다운 봄 풍경을 봤을 텐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웃음의 힘]이라는 시는 언제 읽어도 참 좋다. 그 시집의 시편들 전체가 매우 짧다. 그러니 촌철의 힘이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그의 짧은 시는 짧을수록 한 알의 이슬, 한 알의 사리 같다. 그러니 그는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 언제나 어느 때나 깊은 생각을 하는 시인이라는 걸 곧 알게 된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가 정말로 시인이라는 것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특히 좋았던 것은 평이한 언어였습니다. 삶의 아픔 혹은 세상의 삭막함을 노래하면서도 어둡지 않게 눙칠 수 있는 여유 혹은 혜안이 빛나고 있습니다. 관념성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시 풍토에서 심각과 고독의 제스처가 보편적인 것인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또한, 적어도 어떤 독자라도 그의 시집에서는 읽고 나서 작의가 무엇인지 몰라 머리를 긁적일 일은 없습니다. 이런 투명함에 감동의 울림을 넣을 수 있다는 점은 작가의 가장 돋보이는 미덕입니다.
- 윤정훈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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