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전반에 걸쳐 21세기 초에 이르기까지는 책이 다른 것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변함없는 믿음이 존재해왔다. 사람들에게는 책이 다른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으로 비춰지는 데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비비아나 젤라이저(Viviana Zeliger)가 주장했듯이, 어떤 기업이든 비교할 수 없는 신성한 것과 마케팅이 가능한 불경한 것 사이의 경계를 위반하는 기업은 구조적 모순에 대항해야 했다. 책은 사상과 생각의 창고로, 그리고 인간의 진보를 위한 것으로 인식됨으로써 오랫동안 ‘신성한 창작품’으로 인식되어왔다. 따라서 신성한 것을 지나치게 상품화하려는 현대의 판매 촉진 기술은 상당한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01_ 상업문화와 상업문화에 대한 불만, 39쪽)
21세기 초 미국의 도서판매업은 한때 현대 자본의 변두리에 존재했던 산업과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던 개인 상점, 백화점, 드러그스토어 대신 이제는 몇몇 대기업 이름을 똑같이 내건 서점이 전국 어딜 가나 존재하게 되었다. 오늘날은 출판 도서의 세계나 독자층 취향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던 서적상의 시대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책과 소비자에 대한 데이터 수집, 면밀한 마케팅 기획의 집행 등 합리적인 방식으로 예측 가능성을 제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도서판매의 증진을 꾀하고 있다.(02_ 잡화점 상인에서 인터넷 거물까지, 80~81쪽)
체인서점은 거대시장에서 쓰이는 기법을 차용한 진열을 도입함으로써 비용 절감, 판매 촉진, 더욱 대중적인 고객층 확보의 효과를 얻었는데, 이러한 기법의 사용은 기존 도서판매업계에서는 흔치 않은(그리고 비난을 사는) 일이었다. 슈퍼마켓이나 다른 연관 없는 유통업에서 쓰이던 마케팅 기법, 예를 들어 같은 책을 여러 권 쌓아 다량 판매를 노리는 진열이나 출판사가 돈을 내고 가장 눈에 띄는 진열 장소를 사 모든 매장에서 특정 책을 홍보하도록 하는 방식 등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표준화된 프로모션을 통해 지역에 거주하는 독자를 더욱 획일화된 전국 도서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04_ 표준화된 소비자를 위한 서점디자인, 129쪽)
서점에는 항상 꾸준한 양의 책이 새로 들어오기 때문에 고객은 서점에서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즉, 고객은 서점에 갈 때마다 기대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새로운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 개인 상점과 서점의 다른 점일 것이다. 또한 서점은 다른 특화된 상점보다 더욱 사교적이며 통제받지 않고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05_ 즐거움을 찾는 고객 모시기, 191쪽)
대부분의 책이 정가로 팔리고 있음에도 광범위한 할인을 제공한다는 인식은 체인서점의 중요한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체인서점뿐만 아니라 의류, 사무용품, 가전제품 등을 판매하는 할인 체인서점도 전통적인 소매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매장은 저가로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고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고객을 최대한 만족시키겠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고객에게 다가갔다. 도서시장에서는 인터넷서점인 아마존이 가격 전쟁을 부추기면서 끊임없는 할인이 지속되었고 가격 전쟁은 더 심화되었다. 아마존과 반스앤드노블닷컴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양한 책을 할인해주었다. (06_ 합리적인 소비자와의 거래, 214쪽)
사실 아마존을 체인서점의 한 부류로 볼 수 있었던 이유도 할인제도와 같은 경쟁 전략과 산업에서 점점 강해지는 영향력 때문이었다. 체인서점과 비슷하게 아마존은 출판사들로부터 우호적인 대우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독립서점을 격노케 한 또 다른 사건은 2000년 ??해리포터와 불의 잔??의 출간이었다. 스콜라스틱(Scholastic) 출판사는 발매일 전에는 유통이 금지된 해리포터 책을 아마존과는 공식적인 발매 개시일 당일에 고객의 집에 도착할 수 있도록 계약했다. 반면 다른 서점은 발매 개시일 전에는 출판사가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판매할 수 없다는 스콜라스틱의 조건을 따라야만 했다.(07_ 소매상의 반란, 264쪽)
체인서점에 대한 독립서점, 노동자, 시민의 비판 가운데 첫 번째는 일상생활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아쉬움이다. 체인서점의 표준화된 효율성은 모두 비슷한 상점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했다. 고객의 충동구매만을 유도하기 위한 매장의 구조, 업무 매뉴얼에 쓰인 종업원의 획일화된 인사방법,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신중하게 설치된 비디오카메라 등, 모든 것이 예전에 상품을 사고팔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을 철저히 제한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