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도 아니었다. 끊어질 듯 지친 두 다리도 터질 듯한 심장도 아니었다. 15살 소년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진짜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그저 공이 좋았다. 그래서 공을 쫓아 달리고 또 달렸다. 어두워 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흙먼지가 뒤덮여 백발처럼 하얘진 긴 머리를 휘날리면서 소년은 매일매일 달렸다. 축구를 할 때는 언제나 행복했다. 국가 대표 축구 선수가 돼서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었다.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축구부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꿈에 그리던 축구 선수가 됐다. 학교에서 장학금까지 받는 ‘체육 특기자’가 된 소년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 안타깝게도 소년의 꿈은 시들어 가기 시작했다. 오전, 오후, 야간까지 하루 최소한 세 번, 훈련은 끝없이 계속됐다. 축구를 시작하면서 책과 교실은 소년의 일상에서 사라졌다. 훈련 중간중간 휴식 시간에도 축구부 숙소에만 머물렀다.
훈련은 가혹했다. 실수를 하면 거친 욕설과 함께 코치의 주먹과 구둣발이 얼굴로 배로 온몸을 짓밟았다. 운동이 끝나면 거의 매일 밤 선배들의 ‘집합’이 이어졌다. 반바지 유니폼만 입고 ‘빳따’를 맞으면 엉덩이가 터져 피가 났다. 선배들은 유니폼 위에 교복을 덧입고 맞아도 된다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소년은 다른 축구부 친구들처럼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축구 선수라면 이 정도는 당연히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대회에 나가서 예선 탈락이라도 한다면 우선 코치와 선배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끔찍한 매질과 고문 같은 훈련만이 우릴 기다린다. 학교에선 장학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부모님들의 실망은 얼마나 클까? 코치 선생님은 학교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축구가 아니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이미 책을 놓은 지 오래 됐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 다른 친구들과 대학 진학을 위해 성적으로 경쟁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오직 승리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 소년은 점점 친구들에게서 멀어졌고 세상에서 소외됐다. 축구와 축구부가 세상의 전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년의 가슴속에는 뭔가 잘못됐다는 좌절감이 생겼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쌓여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소년은 거리의 친구들과 어울려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스포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식어 버렸고, 축구를 향한 꿈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소년은 길을 잃었고 두려웠다.
소년의 어머니와 선생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어머니를 찾아 방황하는 소년이 인생을 망치기 전에 운동을 중단하고 교실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설득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소년을 불렀다. “얘야, 비록 네가 원해서 축구를 시작했지만, 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엄마가 도와줄게.” 소년은 침묵했다. 아버지도 없이 홀로 삼 남매를 키우며 어려운 형편에도 축구 선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어머니 앞에서 소년은 차마 그만두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무렵 소년은 연습 게임 도중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훈련을 할 수 없었다. 축구를 시작한 뒤 처음 교실로 돌아와 예전의 친구들을 만난 소년은 깨달았다. 비록 먼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소년이 있어야 할 곳은 ‘거리’도 ‘축구부’도 아닌 바로 ‘학교’라는 것을. 학생으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축구부가 삶의 전부였던 소년에게 책과 노트는 너무 낯설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다시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학 생활은 ‘도대체 왜 어린 소년의 순수한 꿈이 그렇게 무너져야 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과연 뭐가 잘못됐는지, 잘못됐다면 뭔가를 바꿀 수는 있을지 고민하면서 스포츠를 공부했다. 비록 암울했던 선수로서의 기억만 남겼지만, 스포츠에 대한 가슴속 깊은 사랑은 그대로였다.
〈스포츠 키드, 스포츠 기자가 되다〉
대학 졸업 후 소년은 방송사 스포츠 기자가 됐고 한국 스포츠의 변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폭력과 수업결손, 승부 조작, 부정 입학 등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내면서도 가슴속엔 아쉬움과 좌절감이 쌓여갔다. 한국 스포츠는 지엽적인 비판과 표피적인 고발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깊이 곪아 있었다. 기사를 쓰면 쓸수록 “아무리 그래봐야 소용없어”, “그래봐야 비리가 사라지진 않아. 더 은밀하게 이뤄질 뿐이지”라는 비아냥거림만 돌아오는 것 같았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 속에 놓여있는 현실은 그대로였다.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젊은 스포츠 기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기자 생활을 잠시 접고 4년여 간의 긴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의 권위적인 스포츠 시스템은 단지 스포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가 결합된 한국 현대사의 모순 덩어리였다. 미디어를 통해 한국 스포츠 변혁의 동력을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스포츠 기자는 현장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고민이 아닌 실천의 시간이다. 한 위대한 교육 사상가의 말처럼, “실천 없는 고민은 허망한 언어일 뿐이다.”(Reflection without Action is Empty Verbalism, 파울로 프레이리)
그렇게 스포츠 개혁의 꿈을 안고 KBS에 복직한 것이 지난 2006년, 해법은 간단했고 전략은 단순했다. 해법은 “기존의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략은 “미디어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구체적 대안 제시 그리고 정부, 체육계와 전략적 협조를 통한 정책 실현”이었다. 난 곧바로 새로 신설된 보도제작국 시사기획 〈쌈〉 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름도 거창한 ‘한국 스포츠 변혁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2년여에 걸친 스포츠 시사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했다. 경기 결과와 스타들의 활약이 주된 관심사였던 스포츠를 구조적 개혁의 대상으로 심층 분석한 국내 언론 최초의 시도였다. 이때 방송된 프로그램이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 1, 2부’, ‘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 보고서 1, 2부’, ‘코트의 마피아’, ‘슬픈 금메달’, ‘박찬호와 마이클 조던’, ‘100만 관중! 100억 적자!’ 등이다. 향후 진행될 스포츠 변혁의 밑그림을 그리고 구체적 과제를 명시화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는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스포츠계의 반인권적 행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2009년 스포츠국으로 돌아온 후 ‘학교 체육 새로운 시작’ 캠페인을 시작했다. 뉴스와 중계방송, 특별 프로그램 그리고 각종 캠페인 광고 방송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스포츠 변혁의 필요성을 공론화해 나갔다. 일부 분야에서는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정부, 학계, 시민 단체, 관련 기관들과 공동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축구 초중고 주말리그 도입, 대학스포츠 총장협의회 신설을 통한 대학 홈앤어웨이 리그(축구, 농구, 배구) 도입 등이 구체적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1년에 제작한 ‘스포츠는 권리다 1, 2부’는 확산된 국민적 공감대와 부분적인 정책 성과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기획됐다. 학교 체육과 생활 스포츠 그리고 엘리트 스포츠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일본식 초중고 학교 체육, 미국식 대학 스포츠 그리고 독일식 생활 스포츠 클럽 시스템의 장점을 한국적 종합 스포츠 시스템으로 통합시켜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특히 이 기간에는 여야 합의로 학교체육 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정책 추진이 가능해졌다.
2012년과 2013년 2년간은 잠시 국내 방송 현장을 떠나 아시아 태평양방송연맹(ABU: Asia-Pacific Broadcasting Union) 스포츠 중계권 협상을 담당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30여 개국을 대표해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FIFA(세계 축구 연맹), OCA(아시아 올림픽 평의회) 등과 협상을 벌이고 방송 중계권을 획득한 뒤 중계방송 실무까지 총괄 지원해 주는 역할이었다. 글로벌 스포츠 산업의 냉엄한 현실을 심도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전근대적인 스포츠 시스템 때문에 대한민국 스포츠 산업은 거대한 글로벌 스포츠 산업의 흐름 속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1세기형 한국 스포츠 개혁의 궁극적 완성을 위해선 반드시 스포츠 산업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개인적 확신을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현장에서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ABU를 통해 남북 간 스포츠와 방송 교류 협상을 전담했던 경험은 통일 스포츠에 대한 새로운 꿈을 심어 주었다. ABU 중계 지원국 중엔 북한도 포함돼 있었다. 2012년 여름 평양을 직접 방문해 런던 올림픽 중계권을 전달했던 일, 그리고 막판까지 가슴을 졸였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소치 동계 올림픽 중계방송 지원 협상 과정은 앞으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스포츠는 앞으로 통일 논의가 무르익기 시작하면 분단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스포츠는 또 통일 이후 남북 간의 문화적 공동체 부활을 위한 핵심 자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2014년 봄, 다시 KBS로 돌아온 나는 또 한 번 대대적인 스포츠 개혁 캠페인을 시작한다. 이번엔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책 실현을 목표로 잡았다. 지속적인 방송을 통해 스포츠 개혁이라는 어젠다 세팅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정책을 검증하고 실현하기 위한 방송 캠페인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이다.
--- 〈Prologue 스포츠 키드(Sports Kid)의 꿈〉 중에서
“스포츠는 복지다. 시민의 권리다. 국가의 의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상이 변했다는 점이다. 정치도 변했고 노동운동도 변했고 사람들의 인권 의식도 변했는데 스포츠만 과거의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스포츠는 지금 시대와의 불화를 겪고 있다.
--- 1장 〈슬픈 금메달〉 중에서
하나씩 하나씩 사실로 드러나는 그 ‘설마’를 확인할 때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현실이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터져 나온 일면에 불과하다.
--- 2장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 중에서
고교와 대학 감독들 그리고 협회 간부는 학연과 지연을 통한 선후배 관계로 끈끈하게 엮여 있다. 특히 한번 ‘작업’을 성공시키면 관련자들 사이엔 영원히 함께 가져갈 수밖에 없는 비밀스러운 유대가 형성된다.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한두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이 거대한 암시장을 허물겠다는 발상은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 3장 〈코트의 마피아〉 중에서
“야 우리 한번 해 보자구. 정말 운동하는 기계가 아니라 운동하는 인간이 한번 돼 보자구.”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런 고민이 생겼어요.”
독수리 농구부는 한국 스포츠의 거대한 모순에 온몸으로 도전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희망의 싹을 틔웠다. 17명의 젊은이들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들려준 이야기는 왜 대한민국 학원 스포츠가 변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새삼 일깨워줬다.
--- 4장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 중에서
그러나 시대적 변화를 거스를 순 없다. 지속적인 언론 보도와 학계, 시민단체의 지원, 그리고 정부의 정책 의지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드디어 대한민국 스포츠에도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5장 〈학교 체육 새로운 시작〉 중에서
“결승선을 통과해서 쓰러지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팔을 내 어깨에 두르면서 정환아 수고했다 말을 하셨을 때 아버지가 어느 때보다 더 커 보였어요.”
끝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기다리는 인생의 레이스, 어쩌면 아버진 스포츠가 아닌 인생의 레이스를 완주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 6장 〈스포츠 대디〉 중에서
고등학교 체육수업의 파행은 극단적인 상황까지 내몰렸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지속적인 체육 수업을 포기해 버렸다. 신체 활동이 가장 왕성해야 할 청소년기에 체육 수업을 포기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자살’이나 다를 바 없다.
--- 7장 〈스포츠는 권리다: 고3이 달린다〉 중에서
“피곤하지만 아침까지 아주 편하게 잘 것 같아요. 제가 행복해 보이나요?”
축구장을 떠나는 모가도 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엔 얼마나 많은 아저씨들이 스스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축구 하나로 저렇게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먼 이야기일 뿐일까? 스포츠는 복지다. 시민의 권리다. 그리고 국가의 의무다.
--- 8장 <스포츠는 권리다: 행복을 달린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