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풀뿌리 한국사
중고도서

풀뿌리 한국사

: 다시 살아 숨쉬는 역사

정가
17,000
중고판매가
6,700 (61% 할인)
상태?
최상 새 상품에 가까운 상품
YES포인트
배송안내
  • 배송비 : 3300원(선불) ?
  • JJEM에서 직접배송
  • 도서산간/제주지역의 경우 추가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 참고사항
  • 중고샵 판매자가 직접 등록/판매하는 상품으로 판매자가 해당 상품과 내용에 모든 책임을 집니다.

  •  한정판매의 특성상 재고 상황에 따라 품절 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10g | 151*228*30mm
ISBN13 9791155682913
ISBN10 1155682912

중고도서 소개

최상 새 상품에 가까운 상품
  •  판매자 :   JJEM   평점0점
  •  특이사항 : 비닐포장만 개봉한 새 상품입니다. 한번도 읽지 않았습니다^^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상품 이미지를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원본 이미지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가장 큰 보상이자 조선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친 조치는 따로 있습니다. 이들에게 ‘대납권’이 주어집니다. ‘대납권’이란 백성들에게 부과된 세금과 공납 물품을 권력자들이 대신 낸 뒤 두 배 세 배로 되돌려 받는 권리를 말합니다. 백성들이 직접 납부해야 할 세금과 공납을 대신 납부한 후 몇 배를 불려 받는 권리? 이제 백성들은 세금도 내 손으로 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막장은 막장을 부르는 법입니다. 백성들에게 서너 배의 세금을 미리 받고 그 중에서 세금을 내겠다는 자들도 나타납니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권력을 틀어쥔 자들이 결국 백성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게 바로 이 대납권입니다. 불과 수십 년 전의 경험은 듣도 보도 못했다는 듯이 말이죠.

p176
결국 세조가 죽기 직전인 1468년 ‘분경’이 허용되었습니다. 고위관리의 집을 돌아다니며 관직을 청탁하는 행위를 말하는 ‘분경’은 태종이 엄격히 금하였던 것으로서 댓가를 받고 관직을 제공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게 합법화되었습니다. 이것을 요즘 말로 말하면 관직 매매가 허용됐다는 이야기가 되죠.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 일일까요?

p203
요동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곧 조선의 국왕으로서가 아니라 명의 신하로서 한 목숨을 부지하겠다는 의사 표시였습니다. 만일 요동 귀부가 이루어졌다면 조선의 반격은 불가능해졌을 겁니다. 어이없게도 이런 선조의 바램을 무산시킨 것은 명이었습니다. 왜의 출정은 소위 ‘정명가도’를 내어달라는 것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명나라를 정벌하러 가는데 조선이 그 길을 열어주지 않으니 침략한다는 뜻입니다. 명은 선조가 요동으로 들어오게 되면 명의 영토로 왜가 들어온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선조의 바램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망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동을 통해 선조는 조선의 국왕으로서 자격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보여집니다. 선조가 한양을 탈출할 때 백성들은 형조와 노비문서를 다루던 장예원을 불태워 버리는 것으로 응답했습니다. 만일 선조가 의주로 가기 전 평양에서라도 사수 의지를 보였다면 민심이 돌아왔겠지만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이제 조선의 기존 체제는 선조의 한양 포기와 뒤 이은 요동 귀부책으로 완전히 파탄이 나게 되었습니다.

p205
선조가 이 나라를 버리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치던 그 순간에 이순신과 의병들이 나라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

p207
전쟁에서 보급은 곧 승리를 보장해 주는 원천이라고 말할 정도로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남쪽 바다를 돌아 서해로 올라가 육군에게 식량과 무기를 조달하려 했던 왜의 의도는 이로써 파탄이 났습니다. 호남의 곡창지대 역시 왜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조선이 전력을 재정비해 반격을 가할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조의 머리 속에 그런 계책이 있을 리 없었죠. 그 역할은 유성룡과 의병들이 대신했습니다.

p215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왜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한 날은 유성룡이 탄핵당한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전쟁의 마무리치고는 참 비극적인 사태가 연이어 벌어진 것이죠. 그리고 선조는 노량해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수군이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듯하다”라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은 이순신이 산 왜적을 물리쳤다고 기뻐하고 애석해 하는 와중에 조선의 국왕 선조와 이순신을 고문했던 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그들에게는 명나라만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p220
인조반정은 조선을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리를 기준으로 펼쳐졌던 광해군의 외교적 노력이 송두리째 부인 당했습니다. 명분을 채우기 위해 명 황제에 대한 광해군의 불충을 내세운 반정 세력은 친명반청(후금)을 표방합니다. 조선 국왕과 양반들의 충성 대상이 명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과 이에 반한 조선의 국왕이 신하들에 의해 교체되었음을 명분으로 내건 정권이 바로 인조반정의 주도세력이었습니다. 이는 선조의 임진왜란 평가와 직접 연결되는 인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임란을 계기로 선조 시절 명은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등 조선의 국정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었습니다. 선조는 조선의 수많은 충신, 장수, 의병의 힘을 무시하고 그런 명에 머리를 조아렸고요. 이런 요인들이 광해군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을 키웠고 결국 인조반정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결정적인 ‘왕권 약화’의 시작이자 일부 집단의 ‘권력의 사유화’가 본격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명반청의 혹독한 결과물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었습니다.

p241
이런 상황에서 대동법을 실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광해군이 즉위할 당시 영의정으로 등용된 이원익이었습니다. 그는 대동법의 실시를 주장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들었습니다. “각 고을에서 진상하는 공물이 방납인들에 의해 중간에서 막혀 물건 하나의 가격이 몇 배 또는 몇십 배, 몇백 배가 되어 그 폐단이 이미 고질화되었는데...”
앞서 말한 ‘공납’의 폐단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결국 이원익의 주장대로 경기도에 대동법이 실시되었습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던 양반사대부의 반발도 대동법을 실시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
대동법은 농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대동법의 전국적 실시는 피하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 지역은 곡창 지대인 ‘하삼도’ 즉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였습니다. 조선의 경제력이 집중된 지역이죠.
대동법의 전국적 실시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인물이 바로 김육입니다.

p267
정조가 비록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사방이 적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왕세손 시절부터 옷을 벗고 편히 잠들지 못했다고 할 만큼 살해 위협에 시달려 왔던 정조였습니다. 즉위 후라고 별반 달라진 점이 없었죠. 영조가 탕평정치를 표방하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에선 언제나 노론에 의지한 데다가 노론 출신 외척 가문의 정치 관여를 막지 못한 것이 정조에게는 가장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실제 즉위 다음 해 궁궐 지붕을 타고 자객이 침입한 적도 있었습니다. 조선 왕조 최초의 국왕 암살 시도였죠.
하지만 정조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즉위 후 꺼낸 첫 마디가 바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이라는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사도세자는 노론에 반대하다 노론과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인물입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했습니다. 노론 일당의 권력 독점을 거부하고 탕평정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p270
우선 화성 건설에 백성들의 강제 부역을 일체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전례 없는 일이었죠. 대신 모든 노역을 임노동으로 대체했습니다. 토지를 잃은 사람들을 돈을 주고 고용함으로써 생활의 방편을 마련해 준 것이자 임금노동의 증가라는 시대의 흐름을 고려한 획기적인 조치였습니다. 그리고 임금노동자 가운데 많은 수가 도망친 노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조가 더 이상 조선에 노비 제도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정조는 도망간 노비를 잡아오기 위해 존재하던 ‘노비추쇄법’을 양반사대부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폐지했습니다.

p339
그러나 당시 대한제국의 집권층은 어느 누구도 망국의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단 한명도 독립운동에 참가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일제가 합방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해 제공한 귀족 작위를 받았습니다. 일제가 수여한 ‘합방공로작’을 거부한 것은 76명 중 단 8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씨, 민씨 등의 왕실 인사와 노론 출신이 대부분인 집권층은 귀족 작위와 더불어 주어진 막대한 은사금에 만족하고 일제에 협력했습니다. 지방 유력 유생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라의 멸망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이처럼 일제의 회유책에 넘어가 제 목숨을 보전하고 배를 불리며 일제의 수탈에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을 때 민중은 극도의 고통 속에 살아가야 했습니다.
을사늑약 이후 진행된 식민지 수탈 경제 체제 수립이 합병 이후 모든 영역에서 대규모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p354
두 달간에 걸친 3.1독립시위는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결국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세계사에 유래 없는 대규모 민족해방투쟁이었던 3.1운동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조선 민중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우선 애국계몽이나 실력양성론에 경도된 독립투쟁 방식에서 무장독립투쟁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두 번째로는 입으로만 민족지도자를 자처하면서 정작 결정적인 시기에는 질서를 부르짖으며 발뺌하는 소위 민족대표라는 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세 번째 각 계층의 부문별 조직 활동이 3.1운동의 과정에서 성장합니다. 그와 동시에 조직되지 않은 민중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알게 된 것이죠. 노동운동, 농민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 등 계층별 조직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제 반봉건 투쟁이 이 계층별 조직의 투쟁과 결합되어 나갑니다.
네 번째로는 조선 민중의 거센 저항에 놀란 일제가 무단통치를 ‘문화정치’로 바꾸게 된 계기가 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 있지만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제한적으로나마 주어진 것은 3.1운동의 가져온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이런 성과가 다시 민족해방 투쟁의 발전에 귀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1.운동 과정에서 조선의 민중이 피 흘리고 있을 때 미국은 ‘윌슨 대통령의 선언은 일본의 영토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은 이미 조선을 제국의 일부분으로 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오늘날 조선을 이전의 상태로 복귀시키려고 하는 제안은 아무래도 불가능하다’고 언명했습니다. 1차 대전 패전국의 식민지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편의상의 ‘민족자결주의’라는 것이 분명해지게 된 것이죠.

이처럼 3.1운동은 실패했지만 실패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제를 물러나는 날까지 그 빛을 잃지 않고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고하고 앞으로 다가올 투쟁을 고취하는 큰 북소리가 되었습니다.


p382
1945년 8월 15일 당시 조선에는 대부분의 독립운동 세력들이 주장하고 온 민중이 요구하던 새 나라 건설의 목표는 반드시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내야만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해방은 김구의 말대로 너무나 급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온전하게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낸 해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과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완전한 독립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공화국 건설, 토지 개혁, 주요 산업 국유화, 친일파 청산 등이 그 과제였습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상품정보안내

  •  주문 전 중고상품의 정확한 상태 및 재고 문의는 PC웹의 [판매자에게 문의하기]를 통해 문의해 주세요.
  •  주문완료 후 중고상품의 취소 및 반품은 판매자와 별도 협의 후 진행 가능합니다. 마이페이지 > 주문내역 > 주문상세 > 판매자 정보보기 > 연락처로 문의해 주세요.

부적합 상품 신고하기 신고하기

  •  구매에 부적합한 상품은 신고해주세요.
  •  구매하신 상품의 상태, 배송, 취소 및 반품 문의는 PC웹의 판매자 묻고 답하기를 이용해주세요.
  •  상품정보 부정확(카테고리 오등록/상품오등록/상품정보 오등록/기타 허위등록) 부적합 상품(청소년 유해물품/기타 법규위반 상품)
  •  전자상거래에 어긋나는 판매사례: 직거래 유도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판매자 배송
  •  택배사 : 스카이로지스틱스 (상황에 따라 배송 업체는 변경 될 수 있습니다.)
  •  배송비 : 3,300원 (도서산간 : 3,100원 제주지역 : 3,100원 추가 배송비 발생)
배송 안내
  •  판매자가 직접 배송하는 상품입니다.
  •  판매자 사정에 의하여 출고예상일이 변경되거나 품절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6,7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