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스쿨(행정대학원) 졸업생이 단상 위로 올라가 졸업 연설을 시작했다. 웨스토 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이라크 파병 생활을 거쳐 케네디 스쿨로 왔다는 그는 묻는다.
“과연 우리가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왜 우리는 대량학살과 인권탄압을 못 본 척하는 걸까요? 과연 하버드생인 우리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느라 2년 내내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하버드가 우리를 선택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대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연설을 듣던 학생들이 함성을 질렀다. 갑자기 졸업이 실감나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버드……. 세계 최고의 지성의 상징. 지난 4세기 동안 하버드인들은 세상의 선두에 서서 인류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지금 졸업하는 우리에게도 그럴 힘이 있고 특권이 있다. 아니 그것은 특권인 만큼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 「하버드 졸업, 끝이 아닌 시작」 중에서
화학 A, 수학 A, 언어학개론……A, 논리적 작문……아아……A. 나는 “야호!”하고 탄성을 질렀다. 내가 올 A를 받은 것이다! 그렇게 불안해 했는데 그토록 조마조마했는데, 결국엔 해낸 것이다!
나는 하버드 4년 내내 학점에 불이 붙어 아등바등 살아가는 밥맛없는 프리메드일 수밖에 없었다. 시험기간 때면 어김없이 하루에 서너 병씩 레드불(red bull, 잠 쫓는 약으로 쓰이는 드링크)을 마셔댔고, 그 때마다 어김없이 피오줌을 쌌다. 졸음을 참으며 공부하다보면 어느 순간 글자 한 줄이 여러 줄로 분산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눈이 빨갛게 충혈될 때까지 빡빡 비볐다. 잠이 들면서도 불을 끄고 편안한 마음으로 두 발 뻗고 잔 적이 없다. 늘 가슴에 읽던 책을 부둥켜안고 불을 켜둔 채로 잠들었다. 얼굴은 늘 잠이 모자라 시체처럼 창백했고, 커피와 초콜릿에 찌들어 여드름 꽃을 달고 살았다. 하룻밤을 샐 때마다 1년씩 나이를 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거울을 보면, 그 속에는 여전히 눈빛이 살아있는 소녀가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릴 각오가 된 자의 눈빛이었다. 나에게 그 눈빛만 있으면 충분했다. --- 「올 A의 성적표」 중에서
화학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었다. 제이콥슨 교수님의 명강의는 200여 명 학생들의 눈길을 수업 내내 꼼짝 못하게 묶어 놓았다. 우리는 교수님의 말 한 마디에 가슴이 뛰고, 충격을 받고, 의문에 휩싸여 조바심을 냈다. 그리고 그것이 명쾌하게 풀리는 순간, 우리는 박수를 치며 전율했다. 정육각형을 그리며 끝없이 뻗어나가는 유기화학물의 분자구조. 열린 듯하면 닫히고, 닫힌 듯하면 다시 열리는 분자들의 신비로운 분리와 결합. 화학식에 맞춰 분자 그림을 그려보노라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그림이 없는 듯했다.
나는 화학이 마구 좋아졌다. 눈을 감으면 화학물의 신비한 분자구조가 아름다운 고리를 만들며 춤을 췄다. 세상의 신비를 한 꺼플씩 벗기는 기분, 그 진리를 하나씩 파헤치는 기분은 어떠한 것일까?
공부가 주는 최고의 기쁨은 높은 점수를 받고 1등을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하버드는 내게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바로 모르는 걸 배우는 기쁨, 배운 것을 다시 확실하게 내 것으로 체득하는 기쁨이었다. --- 「배움을 기뻐하는 자의 아름다움“ 중에서
‘나나 금, 안타깝게도 귀하의 입학 신청을 받아들이지 못해 유감입니다…….’ 툭. 나는 서류 봉투를 떨어뜨렸다. 불합격……. 그럴 리가. 내가 인터뷰를 얼마나 잘 봤는데. 나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인터뷰어가 얼마나 친절하게 말했는데. 불합격이라니. 그럴 리가 없어!
예일은 나를 거부했다. 그토록 큰 기대감을 안겨주고, 그토록 합격에 대한 강한 확신을 심어주고, 가만히 있던 나를 흥분과 기대로 설레게 만들어 놓고는 퍽 하고 뒤통수를 쳤다. 배신감……. 처음 드는 감정은 배신감, 그리고 분노였다. 나에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니들이 원하는 게 뭐니? 내가 아무리 GPA가 좋고 감동적인 에세이에 화기애애한 인터뷰를 치러도 그 알량한 미국 시민권이 없다는 거, 그게 문제니?
그 날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오만 가지 생각으로 몸부림쳤다. 대부분은 예일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었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혐오, 그리고 이것이 내 인생의 한계라는 수치심, 절망감이었다. --- 「‘불합격’이라는 미스터리」 중에서
“으아악!”
다음 순간, 나는 턱을 감싸 쥐며 식당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칼로 도려내는 듯한 시린 통증이 잇몸을 뽑아버릴 듯 관통하고 있었다. 쳀가 와르르 빠지고 잇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것 같은 통증. 나의 비명소리는 식당뿐만 아니라 커크랜드 하우스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 날카롭고 높았다.
의사는 치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몇 알의 진통제를 처방해 주었다. 하지만 진통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밤새도록 통증이 밀려올 때마다 숨을 멈추고 흐느꼈다. 잇몸의 고통이 얼굴 뼈마디 전체로 번지고, 이제 뇌 속까지 저릿저릿 파고들었다.
다음 날, 나는 핼쑥해진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학교 이메일에 로그인을 했다. 조교가 보내주는 중간고사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세포생물학, C, 한국사, D,…….
헛. 헛허. 흐흐……. 입에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최악이다. 바닥이다. 나는 의대 진학에 실패했고 내 치아는 모조리 흔들리고 있으며 나의 하버드 마지막 학점은 D이다. 두 눈에서 뜨거운 산성비가 줄줄 흘렀다. 뺨이 타는 듯이 아팠다. --- 「하버드 마지막 학점」 중에서
“나나야, 다가오는 졸업과 하버드에서 이룬 모든 크고 작은 승리들을 축하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대학원생으로서 미리 학문의 성장통을 겪은 언니답게, 언니는 나의 딜레마와 고충을 꿰뚫고 있었다. 언니는 ‘크고 작은 승리’라고 말했다. 내가 내세울 만한 승리란 고작 나 자신을 견디고 참아낸 것밖에 없는데……. 좋은 성적표를 받은 것이나 의대 진학에 실패한 것이나 컬럼비아 대학에 합격한 것은 별일이 아니다. 더 큰 승리는 나 자신을 지켜낸 것. 포기하지 않고,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고, 하버드 4년을 생존해 낸 것. 언니는 바로 그것을 승리라고 말해준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 했던 대상은 하버드의 수많은 천재들도 아니었고, 살벌한 프리메드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 자신의 나약함, 수많은 단점들과 싸워야 했던 것이다.
내가 과연 이겼을까? 그래, 의심하지 말자. 나는 나를 이겼다. 나는 나의 바닥을 보았고 거기서부터 다시 기어 올라왔다. 쳐다보기조차 싫었던 자아와 마주했고 그걸 부둥켜안고 끌고 나왔다. 나는 수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더 강해졌다. 나는 성장했다. 엄마 아빠, 나 이제 아무 죄책감 없이 나의 승리를 자축해도 되겠지요? 나 이제 나 자신과 화해해도 되겠지요?
--- 「내가 싸워야 했던 것, 나 자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