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서쪽으로 시오리 임진강가에 반구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세종조의 명사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 정승의 정자입니다. 18년간의 영상직을 치사하고 90세의 천수를 다할 때까지 이름 그대로 갈매기를 벗하고 그의 노년을 보낸 곳입니다. 단풍철도 지난 초겨울이라 찾는 사람도 없어 한적하기가 500년 전 그대로다 싶었습니다. 당신은 아마 똑 같은 이름의 정자를 기억할 것입니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이 그것입니다. 압구정은 세조의 모신이었던 한명회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입니다. 반구정의 반과 압구정의 압은 글자는 비록 다르지만 둘 다 ‘벗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정자는 다같이 노재상이 퇴은하여 한가로이 갈매기를 벗하며 여생을 보내던 정자입니다만 남아 있는 지금의 모습은 참으로 판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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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시대를 고뇌했던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가 청산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당신의 말은 옳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항상 역사서의 둘째권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죽헌을 들러 지월리에 이르는 동안 적어도 내게는 우리가 역사의 다음 장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 의심스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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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하2리에 있는 온달산성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1,400년 전에 과거로부터 띄우는 이 엽서가 당신에게 어떻게 읽혀질지 망설여집니다. 온달산성은 둘레가 683미터에 불과한 작은 산성입니다만 깎아지는 산봉우리를 테를 두르고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투사 같습니다. 결연한 의지가 풍겨오는 책성입니다. 그래서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성이었습니다. 다만 하2리 마을 쪽으로 앞섶을 조심스레 열어 산성에 이르는 길은 내주고 있었습니다. 산중턱에 이르면 사모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전사한 온달 장군의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자 평강공주가 달려와 눈물로 달래어 모셔간 자리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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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의 경로와 온도의 변화. 도자기와 가마가 이루어내는 가마속의 복잡한 곡면 그리고 그 곡면 속에서 일어나는 무궁한 변화와 우연에 대하여 과학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대단한 것은 못됩니다. 뿐만 아니라 기온, 습도, 바람 등 과학이 예측해낼 수 없는 과학 이상의 웅장한 세계가 엄존함을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게 됩니다. 사람이 자연에 관하여는 상한은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한다음 결과를 기다리는 정성과 겸손함일 것입니다. 필연과 절대와 신념이라는 정신사의 오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연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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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는 아기를 업고, 양손에는 물건을 들고, 머리에는 임을 이고. 그리고 치맛자락에 아이를 달고 걸어가는 시골 아주머니를 한동안 뒤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의 일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에다 아기까지 업고 있는 아주머니의 고달픔은 물론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머리 위의 임이었습니다. (중략) '저 아주머니에게 손이 하나 더 있었으면......'
--- p. 66
당신이 힘들게 얻어낸 결론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철폐는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일과 직접 맞물려 있다. 는 것이라면 그리고 한 시대의 정점에 오르는 성취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에 얼마만큼 다가서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애를 읽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면 당신은 이곳 지월리에도 와야 합니다.
--- p.33
당신은 유적지를 돌아볼 때마다 사멸하는 것은 무엇이고 사람들의 심금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를 돌이켜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새로이 읽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라고 하였습니다. '과거'를 읽기보다 '현재'를 읽어야하며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 p.84
나의 미륵 여행은 역시 미완의 여행으로 끝난 느낌이었습니다. 민중의 미적 정서가 상투화되어버리는 것만큼 절망적인 것은 없습니다. 소망의 세계마저 제도화되어 버린다면 미륵은 영원히 미완인 것으로 완성되어 버릴 것 같은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최후의 그린벨트가 바로 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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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서쪽 끝 하일리는 저녁노을 때문에 하일리입니다. 저녁노을은 하루의 끝을 알립니다. 그러나 하일리의 저녁노을에서는 하루의 끝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이 적과 흑으로 확연히 나누어지는 산마루의 일몰과는 달리 노을로 물든 바다의 일몰에서는 저 해가 내일 아침 다시 동해로 솟아오르리라는 예언을 듣기 때문입니다. 하곡 정제두 선생이 당쟁이 격화되던 숙종 말년 표연히 서울을 떠나 진강산 남쪽 기슭 이곳 하일리에 자리잡은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이곳 하일리에서는 오늘 저녁의 일몰에서 내일 아침의 일출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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