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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외로움을 천천히 나의 외로움에 기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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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외로움을 천천히 나의 외로움에 기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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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454g | 140*208*30mm
ISBN13 9788998120689
ISBN10 8998120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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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생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모두가 생각의 계단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12층이 딱 완벽하다. 올라가는 데엔 3분26초가 걸리고, 내려오는 데엔 2분 18초가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라켈은 중간 정도로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를 풀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휘파람으로 불었다. 혹은 떠나온 고향 도시를 생각했다.
--- p.14

“D단조는 모든 조들 중에 가장 슬퍼.” 라고 다비드가 말했다. “위대한 작곡가들이 진짜 아름다운 곡을 썼을 땐 항상 D단조였어. 시벨리우스의 D단조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아니면 멘델스존과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바흐의 샤콘도.” “그런데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A장조잖아.” 라켈은 강하게 반박했다. “그건 프랑크의 소나타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촘촘히 엮여 있어서 둘을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야.”라고 다비드가 답했다. “마치 장조와 단조가 곡에 함께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야. 곡이 우주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처럼.” 마치 사랑하는 것처럼, 라켈은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사랑을 하게 되면, 이 소나타처럼 강렬하고 아름다울거야. 단조로 온 너는 장조로 머무르리라.
--- p.35

그녀가 야콥 크록스타를 만난 후 그녀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것 같았다. 구내 식당에서 그를 처음 만난 순간이 새로운 시대를 구분하는 원점인 것처럼. 지금부터는‘A.D. (기원후)’ 대신에 ‘A. J. (야콥 크록스타 후)’라는 연호법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A. J. 1년. 야콥 크록스타를 처음 만난 후, 그를 구내 서점에서 다시 마주치다.
A. J. 2년. 그녀가 황금비에 대한 발표를 하다.
A. J. 3년. 그녀가 위상 수학 수업을 듣다.
A. J. 4년. 그녀가 전공 과목으로 프랙털 이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다.
A. J. 5년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 p.82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수제 초콜릿 세트 애호가가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어느 초콜릿을 고를지 정하기 위해 우선 상자의 겉면을 꼼꼼히 살펴보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인다. 그러다 보면, 이미 누군가 그것을 가져갔다는 걸 알게 된다. 실망감을 삼키면서 차선의 초콜릿이라도 찾기 위해 그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한다. 만약 찾던 초콜릿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들은 맛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아서 종국에는 실망하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두 번째 유형은 잘 살펴보지도 않고 상자에서 마음대로 하나를 꺼내서 만족스러운 듯 입에 넣고 편안하게 그 맛을 음미한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초콜릿 선정 방식을 전염시키고 그들의 삶은 불필요하게 복잡해진다. 야콥은 더는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초콜릿을 먹지 못한다. 라켈의 잘못이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지 일단 곱씹기 시작하면 고민을 멈추기 어렵다.
--- p.125~126

“너는 위대한 연애소설에서 주인공이 몰두하는 여자와도 닮았어. 깊이 집중해 있는 얼굴이 그를 반하게 한 여자 말이야. 가여운 작가님이 네가 현실에서도 존재하고 자기 앞에 살아 있는 존재로 서 있는 걸 발견하고, 현실이 가상을 앞지를 수 있다는 걸 발견하고 놀란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지. 만약 네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면 그는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소설을 쓸 수밖에 없을 거야. 가상이 현실보다 더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소설을 써오던 작가가 있어. 그런데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한 여자가 그의 사인회에 불쑥불쑥 나타나. 마치 현실이 가상보다 더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말이야. 그래서 그 소설 속 작가는 혼란스러워하게 되지.” 라켈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라켈이 야콥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 그녀가 바라는 바로 그 방식으로 그녀의 영혼을 간지럽히는 능력이었다.
--- p.139~140

“작가님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남편과의 어려운 관계가 집필을 어떻게 방해했는지에 대해 들려주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작가님과 남편의 관계가 일종의 경쟁 관계였다고요. 하지만 그분과의 관계가 작가님이 쓰신 멋진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젊은 작가에게 조언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젊은 작가였던 예전을 회상하시면서요. 젊은 작가가 다른 선택을 하길 추천하시겠어요?” 라켈은 자신이 방금 던진 사적인 질문에 화들짝 놀라서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최근에 사랑과 대작 집필 중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젊은 작가에 대한 책을 읽었거든요. 작가님의 생각은 어떤지 정말 듣고 싶어요.”

나이 든 여인의 얼굴에 놀라움이 담긴 미소가 스쳤다. 마치 이 질문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녀의 얼굴이 다정한 사려 깊음으로 빛나자 라켈은 곧바로 그녀가 좋아져버렸다. “아시겠지만 우리가 거대한 사랑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도망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죠.”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라켈은 그것이 자신이 바랐던 최고의 위로라고 생각했다
--- p.199~200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돌아설 때 모든 신체의 장기들에게도 연락을 해줘야 한다. 뇌가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심장이 몸을 돌아서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술, 자궁, 배, 쇄골, 귓불, 눈꺼풀, 오금, 발가락, 엉덩뼈능선, 참 그렇지 배꼽 안 구멍까지 몸을 돌아서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자취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공간들. 이름조차 없는 발가락 사이의 공간들. 턱과 쇄골 사이의 오목한 골. 음순 사이의 공간. 이리로 와, 친구들. 이제는 나랑 같이 가자. 난 너희 모두가 다 필요해.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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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후속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D단조로 쓰인 아름다운 연애소설. 침대 협탁에 이 책이 있으니 덜 외로운 것 같다.
- 가브리엘 미카엘 보스그라프 모로 (VG)
사랑의 다양한 모습과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반가운 이야기
- 비그디스 모에 스카르스테인 (Adresseavisen)
수학을 음악으로, 삶을 시로 바꾸는 놀랍고도 짙은 소설
- Dagsavi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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