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순전히 힘으로 억압하려고 했던 이전의 시도에 이어 현재 고행들을 계속하는 동력은 강한 고통의 느낌들을, 그것들에 사로잡히지 않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호흡 명상’ 수행 시도는 힘으로 제어하려는, 기본적으로 같은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를 악물고 혀는 입천장에 대고’ 마음을 마음으로 제압하는 것까지도 보살이 추구하는 목표에 이르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가 다른 제어 수단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누구라도 잠시 동안 이를 악물고 혀는 입천장에 대보면, 기존 수행 기조를 유지한다면,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호흡제어 수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삿짜까 긴 경」, 산스크리트 단편 버전, 그리고 같은 에피소드를 다룬 『증일아함』의 해당 내용은 공통적으로 무호흡 명상 수행의 몇 가지 방법을 전한다. 위의 번역 구절에서 호흡 제어의 첫 번째 방법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머리에 칼끝으로 맞아서 생기는 두통에 대한 비유는 호흡 제어의 두 번째 방법과 관련하여 「삿짜까긴 경」에 나온다. 대장장이의 풀무 굉음을 언급한 「삿짜까 긴 경」의 첫 번째 비유는 산스크리트 단편 버전에서는 호흡 제어의 두 번째 방법을 설명한다. 이 수행의 세 번째 방법은 약한 사람의 머리에 가죽 끈을 동여매는 강한 사람에 비유된다. 그리고 네 번째 호흡 제어 방법은 소의 배를 가르는 백정을 들어 설명한다. 앞의 두 가지 이미지는 초기 법문들에서 고통스러운 경험들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 이것은 다섯 번째 호흡 제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때에는 약한 사람이 두 명의 강한 사람에 의해 뜨거운 숯불 구덩이 위에서 지져지고 태워지는 고통에 비유된다.
이 다양한 호흡 제어 방법들을 설명한 후에, 「삿짜까 긴 경」은 보살의 정진을 목격한 천신들이, 그가 이미 죽었는지 아니면 곧 죽을 것이지 궁금해 하면서, 그의 상태에 대해 의견을 말했다고 한다. 그런 천신들의 언급이 산스크리트 단편 버전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증일아함』에서는 오히려 보살이 단식을 실행한 후에 나온다.
『마하와스뚜(Mah?vastu, 大事)』는 그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보살의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이, 그의 호흡이 멈춘 것을 보고, 보살이 죽었음에 틀림없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한다. 한역으로 현존하는 『우다나(Ud?na, 自說)』 모음집은, 보살이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보자마자, 일부 천신들은 그가 죽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이들이 그가 죽었거나 죽을 지경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보살이 호흡 제어 수행을 했다는 「삿짜까 긴 경」의 설명은 미래 붓다의 고행에 대한 다른 설명들에서도 확인된다. 사실 이 ‘무호흡’ 명상법들과 그것들에 수반되는 비유들만으로도 그가 많은 열정을 갖고 이 수행에 전념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시 깨달음에 이르는 잠재적인 도닦음으로 보였던 것을 추구하려는 미래 붓다의 강한 결심을 보여주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호흡 과정에 대한 분명한 흥미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p.119~121, 「호흡 제어」 중에서
『증일아함』의 서술에 따르면,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붓다가 곧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붓다에게 가서 그보다 먼저 마지막 열반에 들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붓다는 선뜻 허락했다. 그녀는 승원으로 돌아와서 다른 비구니 수행승들에게 마지막 니르바나에 들겠다는 뜻을 알렸다. 이것을 들은 다른 비구니 수행승들도 붓다에게 가서 그보다 먼저 마지막 니르바나에 들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붓다는 이번에도 선뜻 허락했다. 비구니 수행승들은 승원으로 돌아온 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및 뛰어난 성취를 이룬 비구니 수행승들인 그녀의 제자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마지막 니르바나에 들었다. (중략)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의 인상적인 죽음은 붓다의 마지막 명상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완전한 명상법과 평정 등 기본적인 자질을 돋보이게 한다. 죽음이 예상되는데도 그녀의 마음은 붓다의 마음처럼 동요하지 않았다. 위 번역 구절에서 언급된 그녀의 제자 500명의 비구니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명상 수행을 통해 죽음의 시작조차도 더 이상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러 마지막 숨에 이르기까지 동요 없이 명상 능력과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이 여성 제자들이 붓다가 갖춘 최고의 내적 균형과 자유에 필적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p.367~374, 「마지막 명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