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의 남편, 명문대를 나온 지상파 방송국 PD. 월급 빵빵하고 정년까지 보장되는 그의 문제는 뭐였을까? 어떤 부부도 갈등은 있다. 문제는 그 갈등의 해결 방식이다. 주희와 남편이 부 부싸움을 하고 나면 남편은 자기 서재로 쏙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잠시 후, 같은 아파트 단지 옆 동에 사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달려와 말했다.
“아니, 네 남편이 술을 마시니, 담배를 피우니, 바람을 피우니. 왜 또 싸움질이야!” 그 생활 3년 만에 주희는 이혼했다. 잘 했다.
완벽한 것처럼 보였던 남편의 빈 곳에는 엄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PD 님은 마마보이였다. 한국 남자 중에 “난 절대 마마보이가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끄럽게도 난 서 른아홉까지 마마보이였다. 그해 추석에 부모님 댁에서 1박만 하고 오기로 했지만 2박을 하고 처가에 가지 못했다. “하룻밤 더 자고 가라”는 어머니 말씀 때문이었다. 아내는 귀가하자마자 가출, 4일 뒤에 돌아왔다. 그 3박 4일 동안, 나는 역지사지易地思之했다. 그때야 비로소 보였다. 아내가 많이 참았다는 것을
--- p.17
얼마 전 페이스북facebook에서 꽤 괜찮은 남자가 늦게 결혼을 한다면서 공식 구혼을 했다. 그 결혼 조건 중 하나가 ‘우리 어머니를 잘 모실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잘 모시는 거다. 왜 아버진 놔두고 네가 모시려고 할까? “네가 모실 사람은 너의 아내란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엄마 편드는 남편은 어른이 아니고 어린이다. 결혼하지 말고 엄마랑 살지 왜 결혼했나?
남자의 영혼에는 아이가 산다. 그래서 이 족속들은 죽을 때 까지 마미mommy가 필요하다. 영국 영어로 mummy는 엄마라는 의미와 동시에 미라, 생기 없는 사람, 시체라는 뜻이 있다. 엄마가 너무 사랑을 많이 쏟으면 아들은 좀비가 된다는 깊은 뜻이 있다. 대한민국에 그래서 좀비들이 많다. 그러니 때로 아내가 엄마가 되어 주는 게 맞다. 하지만 그와 같은 비율과 중량으로 남자가 아내의 아빠가 되어 주어야 한다. 여자의 영혼에도 아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그 영혼 깊은 곳에서 홀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보듬어 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 p.20
“오랜만에 친정에 가서 저녁을 먹었어요. 남편은 지방에서 근무하는데 격주로 올라옵니다. 그날이 하필 남편이 오는 날 이었어요. 언니와 형부도 와 있었기에 남편한테 ‘이쪽으로 오라’고 했지요. 그날 친정엄마가 김치를 주시는 날이라 차를 몰고 가 있었어요. 여기 들러서 오랜만에 엄마와 언니도 보고 가 자고 했더니 남편이 대뜸 ‘술 마셨어?’라고 묻는 거예요. ‘아니, 당신 오면 이제 한잔하려고’ 하니 ‘그럼 운전은?’ 이러네요. ‘그냥 대리 불러. 나도 피곤해’ 하고 그는 바로 집으로 가버렸죠. 남편은 여수에서 KTX를 타고 오니 피곤하기도 할 거예요. 그래도 그땐 정이 확 떨어지더라고요.”
나는 진희 씨의 말을 듣고 왜 그녀가 남편에게 ‘정이 떨어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이 지방에서 근무하는데 격주에 한 번 올라온다. 남편은 일하느라 지친 상태다. 그런데 아내가 술 마시는 거 따라 가서 한 잔도 못 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운전해서 집에 모셔다 달라?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진희 씨의 말이 이어진다.
-
“좀 다정하게 얘기해줄 수도 있잖아요. ‘오랜만에 어머니 댁 에 갔구나. 알았어. 운전 내가 할게. 처형이랑 얘기하고 있어’ 이렇게 말해 주면 좀 좋아요? 아니 자기도 와서 한잔하면, 그때 대리 불러서 가면 되잖아요. 내가 남편을 운전수로 쓰겠다는 게 아니에요. 자기도 우리 엄마 본 지도 오래됐고 언니랑 형부도 있으니 들를 수도 있잖아요. 지난 여름휴가 때 남편이 급히 8월 초에 시간이 나는 바람에 숙소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때 형부가 제주도 콘도 회원권을 내주는 덕에 고맙게 갔다 왔거든요. 남편이 일부러 형부 만나기도 그렇고 이런 날 와서 한잔하 면서 ‘고맙다’ 하면 좋잖아요.”
--- p.28~29
미나는 시부모님이 얻어 준 집에서 산다. 시부모님은 미나의 신혼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산다. 미나가 딸을 낳고 나서 1년의 육아휴직이 끝났을 때, 시부모님은 손녀의 양육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어느 날, 미나가 퇴근해서 와 보니 딸 아이 팔뚝에 작은 상처가 났는데 시아버지가 거기에 공업용 본드를 바르고 있었다. 미나는 경악했다.
미나의 시아버지는 최동원과 야구를 했다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 최동원 씨는 야구를 하다 생긴 작은 상처에는 본드를 발랐단다. 상비약을 발라도 시원찮고 꿰맬 수도 없을 때, 더구나 시합을 앞두고 급히 상처를 봉합해야 할 때는 본드가 최고였다는 것. 시아버지도 그때부터 본드를 피부 접착제로 썼다. 시어머니도 ‘칼에 베인 상처에는 오공본드가 최고’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돌이 갓 지난 아기의 상처에까지 그걸 바를 줄은 몰랐다. 아니, 마데카솔 놔두고 웬 오공본드?!
접착제에는 톨루엔, 아세톤,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몸에 해로운 성분이 들어 있다. 이들 유기용제는 피부질환, 눈 자극, 두 통, 불면증, 천식, 호흡기 자극, 신경장애, 폐 및 간장 손상 등을 유발하며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과도한 유기용제 사용은 법으로도 규제하고 있다. 더구나 본드 흡입은 환각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아이의 상처에 그걸 바른다는 건 미친 짓이다. 오공본드 제품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1. 냄새를 맡으면 중독되어 심신장애를 일으킬 우려가 있으므로 절대로 일부러 냄새를 맡지 마십시오.
2.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십시오.
3. 접착 이외의 용도에 사용하지 마십시오.
미나의 시부모는 50년 전통의 본드 회사에서 간곡히 부탁하는 세 가지 주의사항을 모두 어기면서까지 아기의 상처를 본드로 ‘접착’하고 있었던 거다. 미나는 딸아이의 상처에 붙은 본드를 보면서 심각하게 이사를 고려했다.
--- p.47~49
사례―
사만다: 38세, 외국계 회사 근무, 싱글
사만다는 활달한 성격의 전문직 여성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호감 가는 외모에 솔직 담백한 말투를 지녔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는데 남녀불문하고 누구나 그녀를 좋아한다. 얼마 전 나는 책 집필을 위해 인터뷰를 요청해도 되느냐 물었고 그녀는 흔쾌히 응했다. 사적인 질문이 있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묻자 “괜찮다. 내 판단이 허락하는 한 솔직하게 답 하겠다”라고 했다.
- 먼저 꼰대 같은 질문을 하겠다. 싱글인 걸로 아는데 결혼 한 적이 있는가?
- 없다.
- 그럼 결혼을 못 하는 건가, 안 하는 건가?”
- 못 하는 것 같다.
-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한국 남자들은 꼰대 아니면 변태다.
- 말문이 막혀 한동안 질문이 생각나지 않았다. ‘10년 지기인 나는 어떤 부류인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둘 다’라는 자체 판단이 섰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 호의를 베풀고 친절히 대하면 무리한 질문을 한다. 꼰대같이. 그 질문에 대해 관계가 망가지지 않게 상식선에서 응하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행위로 들이댄다. 변태같이. 그런 거다.
- 예를 들어 달라.
- 오래 다녔던 직장에서 분점 파견을 보냈다. 나와 다섯 살 연상의 남자 상사와 둘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환경은 7성급 호텔 같았지만 하루 종일 그하고만 지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친해져야 했다. 당연히 회식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술도 마셨다. 나는 다만 직장 상사로 대했고 그도 나를 후배로 대해주길 바랐다. 우린 거의 오피스 커플 같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를 이성적으로 좋아하진 않았다. 여기가 분기점이다. 공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사적으로 좋아하는 걸 구분하지 못한다. 결국 그가 성추행을 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 경고하거나 윗선에 보고했나?
- 물론이다. 그만둔 게 10년 전인데 그때도 보고 체계가 엉망이었다. 중소기업이라 사후처리가 아예 없었고, 보고 뒤에도 그의 얼굴을 봐야 했다. 또 추행을 하기에 바로 사표를 던졌다.
- 유감이다. ‘No means no’를 무시하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
- 친절하게 대한다고 좋아하는 거 아니다. 한국 남자들이 이걸 모른다.
--- p.98~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