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래되고 위압적인 건조물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일은 전무하며, ‘초시간성’ 또한 예외가 아니다. 대다수의 유서 깊은 고도古都는 그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신과 반신들의 건축 계획으로까지 이어지며, 이런 도시들보다 한층 더 오래된 칸나이스 산맥의 중후한 구조 또한 그런 계획에 따른 산물이다. 영겁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초시간성’은 왕궁에서 감옥, 창관娼館에서 대학, 수도원에서 식인귀 소굴을 망라하는 온갖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전해 오는 바에 따르면 스스로의 형태조차도 사용자의 욕구에 부응하는 모양으로 바꿔 왔고, 따라서 이 장소는 모든 세월의 메아리로 가득 차 있으며, 혹자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 액을 막는 손짓을 하며) 은밀히 속삭이는 얘기에 따르면 ‘장로신’들이 이 지상을 활보하던 시절의 유적이며, 그들과 현세를 잇는 접촉점이며, 장난감, 기계 혹은 인류를 초월하는 견식을 가진 고차의 존재들 ― 이들로부터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자의식의 불꽃과 첨예한 호기심을 부여받고 초기 단계의 영혼을 발달시킨 인류가 때로는 그 친족으로 간주하는 털북숭이 수상樹上 생활자들의 견식을 초월했듯이 ― 에 의해 창조된 기이한 생명체일 가능성조차 있으며, 유일하게 그 목적을 잘 아는 예의 반짝이는 존재들을 위해 어딘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모종의 차원간次元間 집회소로서 기능했지만, 반짝이는 존재들은 그들의 간섭이 만들어 낸 설익은 과실 ― 그들만 아니었더라면 유인원으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인류 ― 을 뒤에 남겨 두고 고차의 지복至福을 향해 지상을 떠나갔다고 한다. 일부 형이상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초시간성’은 심령적인 소재를 써서 시간이 없는 차원에 만들어진 존재이고, 따라서 지금 와 있는 이 조잡한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며, 동등한 양의 선과 악, 그 상대물이자 그보다 더 흥미로운 사랑과 증오에 아름다움을 섞어 만든 존재이며, 따라서 불길한 동시에 환희에 차 있고, 심령적인 해면과 맞먹는 흡수력을 가진 영기靈氣와 그에 상응하는 변별력을 가지고 있으며, 뇌 우반구의 일부만이 기능하고 있는 인간이 살아 있다는 맥락에서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있고, 분단된 고로 불완전한, 그러나 범용한 현세의 변천을 능가하는 온갖 비현세적인 이유 ― 형이상학자들조차도 두 번 다시 되풀이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정도로 복잡한 ― 에 뒷받침된 의지의 행위에 의해 시간과 공간에 계류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틀린 얘기이다. 좀 더 실제적인 경향을 가진 이론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말이다. 오래된 건물들은 아무리 잘 만들어진 것조차도 사용자들의 흔적을 획득하기 마련이고, 그 내부에서 받게 되는 물리적 혹은 심령적인 인상은 분위기를 많이 타는 법이다. 특히 기상의 변동 폭이 큰 산악 지대에 위치해 있을 경우에는 말이다. 그렇다. 아까 언급된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무렵 이 건물은 바깥세상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기대에 거의 완전히 부응하는 형태로 기능했다. 그 정도로 민감한 것이다.
‘오래된 자’의 거처이자 마법사와 악마들로 가득 찬 이 건물은 또다시 변화했고, 그 본질의 다른 국면이 소환되었다.
이 장소의 진정한 본질이 시험받는 것은 물론 이것이 근거하고 있는 불완전한 의지가 도전받을 때이다. 악이나 선의 증명이 당사자의 행동으로 판단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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