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아들을 통해 자신의 남성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사내아이들에게 자신이 지닌 수컷다운 가치들을 전수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러니 아버지는 그렇게 할 테고, 나를 진짜 수컷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의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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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그걸 짓이라고 부르며 내게 말했다 그 짓 좀 그만해라. 그들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에디는 계집애처럼 굴까. 그들은 내게 엄하게 말했다. 가만 좀 있어. 그렇게 미친년 같은 요란한 몸짓 좀 그만할 수 없겠니. 내가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내 자신의 미적 취향을 고집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여자처럼 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내가 왜 이런 줄을 몰랐다. 그런 몸놀림에 의해 지배당했고 제압당했으며, 그런 날카로운 목소리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다. 내 발걸음도, 움직일 때 엉덩이가 좌우로 살랑살랑 뚜렷하게, 지나치게 뚜렷하게 흔들리는 것도, 내 몸에서 새어 나오는 날카로운 비명도, 갑자기 놀라움이나 황홀함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내가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내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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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가면서 점점 더 묵직하게 내게 와 닿는 아버지의 눈길과 그의 내면에서 치솟는 공포, 그리고 자신이 창조한 괴물과 그 괴물이 매일매일 조금씩 더 확실하게 드러내는 비정상 앞에서 느끼는 그의 무력감을 감지했다. 어머니는 이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했고 아주 일찌감치 두 손을 들어 버렸다. 더 이상은 못 하겠고 자신은 이런 걸, 나 같은 아들을 요구한 적이 없으며 이런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설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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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좁고, 방과 방 사이에 문이 없어서 ― 그저 석고 보드와 커튼을 이용해 방들을 나눴을 뿐 문이나 진짜 벽을 세울 여력은 없었다 ― 아버지가 벌거벗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버지. 아버지는 벌거벗고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걸 나무랐다. 아버지의 몸은 내게 깊은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홀딱 벗고 돌아다니는 게 좋다, 내 집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아직까진 이 집에서는 내가 아버지고, 내가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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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아버지는 거실의 자기 의자에 퍼질러 앉아 아니스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볼륨을 너무 올려놓은 텔레비전, 그 앞에서 잠이 든 경우엔 코 고는 소리, 어머니가 화면 앞을 지나가기라도 할라치면 어머니에게 퍼붓는 욕설. 늘 같은 자세. 두 다리는 쫙 뻗고 손은 배 위에 올리기. 누나가 하는 말, 뚱뚱한 배 위에 손을 올려놓으니 영락없는 임산부네. 거실에는 어머니가 만드는 감자튀김 ―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 난 위장이 든든해지는 사나이의 음식이 좋아. 비쌀수록 보잘것없는 부르주아들이 먹는 그런 것 말고 ― 때문에 기름내가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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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디서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기 마련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면, 난 여자일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이 변하는 모습을 보기를, 어느 날 놀랍게도 성기가 사라져 버린 상태와 맞닥뜨리기를 꿈꿨다. 나의 성기가 저녁에 말라비틀어져서 아침에 여자의 성기에 자리를 내주는 일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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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야만 했다. 하지만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지를 모른다면 달아날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는다. 도주가 하나의 가능성일 수 있음을 모르니까. 우선은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려는 시도를 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려는 시도를 했다.
--- p.216
어느 날 그 아이가 제법 많은 학생들이 몰려 있는 복도에서 소란을 피웠고, 나는 그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가리 닥쳐, 호모 새끼야. 아이들이 전부 웃어 댔다. 모두가 그 아이를 봤고, 또 나를 봤다. 복도에서 그런 욕설을 한 그 순간, 나는 그 아이에게 수치를 옮겨 놓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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