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악의 권능으로 다스리는 정치적 덕의 육성’을 부각한 것이 3장인데, 이런 정치적 덕을 육성하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 저 선왕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짊의 탁월한 모범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당대의 정치적 현실 속에서 인공적으로 창조하여 천하가 길이 모방하도록 하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바로 이 최고의 덕 육성법을 실현하기 위해 ‘어짊’ 혹은 부사어 ‘어질게’가 지배할 새 동주의 주인을 찾아다닌 것이 공자의 천하 주유다.
시세의 흐름이 자신의 뜻과 같지 않음을 깨닫고 자신의 정치적 꿈을 불가피하게 접게 되었을 때에도, 끈덕진 공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천명이라 여긴 ‘어짊으로 돌아간 천하의 실현’을 포기하지 않았다. 단적으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 정치 참여에서 후세를 양성하는 교육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던 것인데, 이런 맥락에서 후계자 안연의 때 이른 죽음이 공자에게 의미한 바를 조명한 것이 4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천하를 구하겠다는 어진 뜻을 품고 그가 가르쳐 전하려 했던 바는, 다음 구절에서 보는 것처럼, 선왕의 통치 행적에 관한 기록을 해석하여 도출한 ‘어짊 체제’의 부사어 구사법을 진실되고 믿음직하게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었다:
공자는 넷으로 가르쳤다: 문헌, 행함, 진실되게, 믿음직하게.
子以四?:文,行,忠, 信。 (술이)
---p.302
…공자가 천하가 무도해지면서 흩어진 그것을 하나로 꿰어 체계화하고 교육 대상을 가리지 않고 널리 가르치는 즐거운 모범을 보임으로써 결국은 천하가 그것을 배워 어짊으로 돌아가는 후일을 기약했던 선왕지도[先王之道]는 무정부적 자연 상태를 극복한 인공 상태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이상적인 길로서의 어짊 한길인데, 어진 그가 어짊에 이끌려서 옛 문헌과 사람들 사이에 아직 남아 있는 선왕지도의 흔적을 수집하여 형상화한 이상적 정치 질서는, 부사어 ‘어질게’가, 끊임없는 수신(修身) 노력 덕분에, 지배자의 언행상 동기, 수단, 목표 전부를 늘 한정하게 됨으로써 그가 어짊 한길을 한시도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이끄는, 부사어 구사의 예법을 만백성이 자연스럽게 모방하게 되어 생기는 질서다.
---p.305
…논어의 이상적 정치에 깃든 종교적 측면은 6장에서 이야기된 선왕지도(先王之道)의 세속화에도 불구하고 보존되어, 남자(南子)를 만나고 나온 공자가 불미한 일이 없었음을 거기 걸고 맹세한 하늘과 같은 신적 권위를 제의 참여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세우고 어진 평천하를 도모하는 군자로 하여금 그가 어떤 궁지에 처하더라도 어짊 한길에서 벗어나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는 초월적 높이를 갖는 어짊의 추구로 화한다. 이런 어짊을 추구하는 군자라면 이승에서 무엇인가 기필코 이루겠다고 어짊 한길을 벗어나지는 않을 터이다. 한시도 어짊 한길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 군자다운 군자의 모습은 다음 인용 구절에서 역연하거니와, 그의 탁월한 부사어 구사의 예(例)들은, 그의 당대가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어진 천하를 실현하는 플랫폼으로 화하게 될 터이다:
공자 가라사대, “부귀는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합당한 도로 취할 수 없으면, 누리지 않는 것이다; 빈천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합당한 도로 벗어날 수 없으면, 벗어 나지 않는 것이다. 군자가 어짊을 벗어났는데, 어찌 이름을 내겠는가? 군자는 한시라도 어짊에서 어긋나지 않아야 하느니, 아무리 급해도 기필코 어짊에 머물고, 넘어지면서도 기필코 어짊에 머물러야 한다.”
子曰:「富與貴是人之所欲也,不以其道得之,不 處也;貧與賤是人之所惡也,不以其道得之,不去也。君子去仁,惡乎成名?君子無終食 之間違仁,造次必於是,?沛必於是。」 (이인)
---pp.303,304
…논어가 데이터 지향 정치 언어를 축으로 읽어 마땅한 텍스트라는 것을 본 저술은 특히, 이렇게 읽을 때 여러 난해한 구절이 선명한 해석의 즐거움을 주는 구절로 바뀐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뒷받침하고 있다. 다음 대목은 전형적인 사례다:
나라 임금의 처는, 임금이 부를 때는 ‘부인’ 임금의 처가 자칭할 때는 ‘소동’,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 칭할 때는 ‘군부인’, 다른 나라에 가서 이방인 앞에서 그를 칭할 때는 ‘과소군’, 다른 나라 사람이 그를 칭할 때는 역시 ‘군부인’이라 한다.
邦君之妻,君稱之 曰夫人,夫人自稱曰小童;邦人稱之曰君夫人,稱諸異邦曰寡小君;異邦人稱之亦曰君夫人。 (계씨)
여기는 논어에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대목이지만 데이터 지향 정치 언어의 관점에서 읽으면 명쾌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즉, 제후의 처는 데이터상으로 별 내용이 없어서 타자와 맺는 관계만 조회해도 이름이 도출되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특히 위나라에서 벼슬을 구하는 공자에게 면담을 요구하여 성사시킨, 위나라 영공의 문란하기로 이름난 부인, 남자(南子)가 여기에 들어맞는 논어 내 유일 사례라는 점을 고려하면, 남자 같은 제후의 처는 그것이 어떤 빛에 의해 무엇의 그림자로 비치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정명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야유에 가깝다고 해석하게 된다. 다음은 이런 해석의 배경을 이루는 논어 한 구절이다:
공자가 남자를 보자, 자로가 불만스러워 했다. 선생께서 맹세코 가라사대,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면, 하늘이 버린다! 하늘이 버린다!”
子見南子,子路不說。夫子矢之曰:「予所否者,天厭之!天厭之!」 (옹야)
---pp.29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