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자신처럼 한때는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 혈기 넘치는 청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동호는 남조선이라는 또 하나의 유토피아를 찾아 나섰고, 이반은 '돈'만이 유토피아라는 것을 알았던것이다.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감상은 금물이다.

'모르겠다. 어차피 인생은 살아남은 자가 승리하는 것 아닌가. 네 목에 18만 달러가 걸려 있다. 나는 나를 위해 살뿐이다.'

한 3만 불 정도 비용으로 쓴다고 해도 15만 불이 남는 장사다. 고생 조금만 하면 평생 통틀어도 벌 수 없는 돈이 들어온다. 이동호 하나 죽여서 그만한 대가가 돌아온다면 누가 거절하겠는가. 그는 병에 남아 있는 양주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쓰러진 이동호 몸뚱이 위로 털썩 쓰러졌다. 술 냄새가 좁은 숙소에서 진동을 했고, 두 사람은 술에 떨어져 꿈도 꾸지 못했다.

"미친놈!"

그는 이동호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우리 조선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 남조선은 겁쟁이들만 모였다구. 썩어빠진 부르주아들 뿐이야. 얻어먹을 것 다 얻어먹고 국지전 한 번만 벌이면 약속이고 지랄이고 다 끝이야. 게다가 우리한테 동조하는 세력이 얼만데 ······ 이동호, 이 바보녀석 남쪽으로 가봐야 대접은 커녕 목숨 지키기도 어려울 게야. 멍청한 놈.'

힘든 것은 안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소련이나 중국도 미국의 손을 들어주어 사실상 자본주의 국가가 되어 있다. 세계에서 미국과 맞장 뜰 만한 국가는 이라크와 북한뿐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라크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울이 코앞에 있기 때문이다. 말이 남조선의 수도지, 사실상 서울 그 자체가 대한민국이다.

'6 · 25때 실수한 거야. 서울만 언제든 먹어치우고 대전 앞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 하지만 서울은 언제든 불바다로 만들 수 있어. 이걸 미끼로 최대한 뜯어내는 거야. 미국, 일본, 남조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