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만 강한 목소리
“엄마, 저 사람은 왜 저기 서 있는 거야?”
미영이는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어요. 운전대를 잡은 엄마는 힐끔 옆을 쳐다보고는 말했어요.
“1인 시위를 하는 거야.”
“시위? 그건 촛불 시위처럼 아주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거 아니야?”
“시위는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사람들이 관심을 두길 바라는 일이 있나 봐.”
뒷좌석에 앉아 있던 미영이는 양팔로 앞좌석을 붙잡고는 엄마 쪽으로 몸을 가까이하려고 애썼어요.
“보통 시위할 때 두 사람 이상 모이면 ‘우리 시위할 거예요.’ 하고 미리 신고해야 하거든. 안 그러면 불법이라서 잡혀가. 혼자서 할 때는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정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서 용기 내서 나오기도 하고.”
“신고해야 한다고?”
“시위가 시작되면 소음도 생기고, 교통에 방해가 되거든. 뉴스 보면 사람들이 도로를 차지하고 행진하잖아. 미리 신고하면 경찰들이 도로가 막히지 않게 교통정리를 해 둘 수 있어. 어디에서 시위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서 대비하라고 알려 주기도 하고.”
미영이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시위자를 찾아 돌아보며 물었어요.
“저렇게 혼자 시위를 하면 효과가 있나?”
“금방 해결되지는 않겠지. 하지만 누군가 신문사나 방송사에 제보해서 관심을 끌도록 도와줄 수 있잖아.”
“아하, 방송국이 있었지. 나도 제보해서 저 사람을 도와줄까?”
백미러에 비친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어요.
“나야말로 아빠한테 제보할 거야. 너 학원 끝나자마자 군것질하느라 엄마 한참 기다리게 했다고.”
미영이는 귀를 막고 고개를 마구 흔들었어요.
“오 노우 맘. 플리즈 돈 텔 데드. 유 노우 댓. 데드스 네깅 이즈 릴리 테러블(엄마, 제발 아빠에게 말하지 마요. 엄마도 알잖아요. 아빠의 잔소리는 정말 끔찍하다고요).”
1인 시위
시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도록 하거나 시민에게 알리려는 방법이에요. 많은 사람이 공개적으로 모여서 의견을 나타내지요.
반면, 1인 시위는 한 사람이 피켓이나 현수막, 어깨띠 등을 두르고 하는 나 홀로 시위를 말해요. 시위는 도로, 광장, 공원 등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어요. 따라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미리 신고하고 허가받아야 하지요. 1인 시위는 이런 문제가 없으므로 신고하지 않아도 돼요.
또 국회 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 재판소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 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등이 사는 집, 외교 기관 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에서는 시위할 수 없어요. 하지만 법률에 시위는 2명 이상이 하는 걸로 정해져 있는 만큼, 1인 시위는 할 수 있죠. 이에 1인 시위는 시위하기 어려운 장소에서도 할 수 있는 국민의 정치 참여 활동 중 하나가 됐어요.
‘유관순’의 생각,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
‘시위’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 앉아 있거나, 특정 장소를 차지하고 떠나지 않거나, 한자리에 모여 계속해서 의견을 말하기도 해. 또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자르는 삭발을 하거나 음식을 일정 기간 먹지 않는 단식을 하거나, 장례식을 치르는 듯하거나 인형에 불을 지르기도 하지.
또, 시위자들은 휘발유 등을 넣어 만든 유리병에 불을 질러 던지기도 해. 시위대를 막는 쪽에서는 눈물 콧물 다 흐르게 하는 최루탄을 터트리거나 물대포를 쏘아대.
폭력이 없는 평화 시위에는 밤에 촛불을 들고 항의하는 촛불 시위가 있어. 촛불 시위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미국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 같은 반전 운동가들이 전쟁에 반대해 시위를 벌인 것이 그 시작이야. 한국에서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효순이·미선이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집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 등이 있었어.
유관순의 3·1 운동 시위
조선 시대에는 단체로 상소를 올리거나 성균관 학생들이 다 같이 수업을 거부하는 식으로 의견을 드러냈지. 성균관 학생들은 나라를 위해 일할 인재들이었어. 그래서 임금과 조정 신하들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배우지 않겠다고 한 거야. 교실에 있어도 못 듣고 안 보이는 척하거나 '아이고~ 아이고~!'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면서 임금의 귀를 괴롭히기도 했어.
이런 고상한 방법으로는 뺏긴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그렇다고 눈에 띄게 시위를 준비할 수도 없었어. 1919년 2월 8일 일본의 도쿄 한복판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모여 독립 선언을 외쳤어. 나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만세 운동은 뜻은 있지만 감히 나서기 두려워했던 사람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거든. 태극기는 품에 숨겨두면 되고 말이야. 나는 만세 시위 도중에 붙잡히고 말았지만, 만주, 연해주, 미국에서도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더군.
너희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독립을 이룬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건 어때? 내가 상상한 대로일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