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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권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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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권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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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44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1023880
ISBN10 8951023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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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오후로 접어들면서 아침까지 멀쩡하게 맑던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비를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묵직하게 변해가는 구름을 불안하게 올려보다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건물들 사이로 종종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한참을 먹구름만 몰고 다니던 하늘은 어느새 소용돌이치듯 휘몰아치는 회색구름으로 탈바꿈하더니 금세 도시 전체가 거대한 그림자로 드리워졌다. 음산함을 풍기는 하늘뿐만 아니라 주위를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축축한 공기가 곧 폭우를 동반하며 비가 내릴 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천둥소리를 시작으로 하나둘 점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지던 빗줄기는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빗줄기로 변했다. 예기치 못한 빗줄기에 우산을 미처 가지고 오지 않은 사람들의 불평 섞인 소리가 들리고 금세 거리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복잡해졌다.
물방울을 여기저기 튀기며 두 팔을 머리 위에 올리고 분주히 오고가는 사람들 틈 사이로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유독 눈에 띄었다. 정신없이 비를 피해 뛰어가도 옷이 젖을 게 분명한데 그 소년은 오히려 비를 맞기로 작정한 듯 걸음을 천천히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준수한 소년의 얼굴 어디에도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비로 인해 뿌옇게 흐려져 버린 세상이 소년의 어둡게 내려앉은 눈빛과 어울려 있었다.
하얀 얼굴 위로 쉴 틈 없이 흘러내린 빗물이 마치 소년의 잔뜩 흐려진 눈빛 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과 같아서, 소년의 옆으로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의 스친 얼굴 사이로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
또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천둥소리가 이어지고 곧바로 검은 구름 사이로 번개가 작렬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분주하게 뛰어가는 사람들 중 눈에 띄던 소년의 윤곽이 그 짧은 순간 확연히 드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소년은…… 울고 있었다. 소년은 정말이지 비와 함께 울고 있는 듯했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는 소년은 절망적인 얼굴로 사람들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끈질기게 퍼붓는 빗줄기가 여지없이 공사장에도 내렸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그 공사장 너머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판자 위로 조금 전 거리를 걷고 있었던 소년이 비를 맞은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힘없이 축 처진 소년의 머리와 어깨 위로 여지없이 비가 내려앉았다. 비안개로 자욱해져 버린 세상 어디에도 소년의 어머니는 없었다.
「우리 아들. 엄마가 먼저 가서 미안해. ……흑, 미안해. 엄마가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흑흑흑……. 미안해.」
“흑흑흑, 엄마. 엄마. 흑흑흑.”
억눌렀던 슬픈 감정이 밀려와 소년은 가슴 위에 올려진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하늘로 올라가버린 소년의 어머니도 함께 우는 것인지 소년의 머리 위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다.
반쯤 지어진 공사장 안에 가슴 위에 올려진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소년의 머리 위로 갑자기 검은 하늘만큼이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더 이상 자신의 머리 위로 빗물이 쏟아지지 않음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 소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소년의 하얀 얼굴과 짙은 눈썹 위로 방울 되어 떨어져, 소년의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순간 흐릿하게 변해 있었다. 빗물이 점점 거두어지고 드디어 소년의 눈에 조금씩 사람의 인영이 선명하게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소년의 물기어린 눈빛 속에 자신의 볼만큼이나 눈물 자국이 선명한 소녀가 들어왔다. 자신보다 두세 살은 어림직한 소녀가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의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소년은 생각했다. 지금 자신도 저런 모습일까? 지금 저 소녀처럼 자신도 눈에 가득 물기를 머금고 있을까? 호기심과 슬픈 빛을 동시에 빛내고 있는 소녀의 눈 때문에 소년은 멍하니 소녀의 눈만 바라보았다. 소년의 머리 위에 있는 노란 우산은 소녀의 얼굴만큼이나 깨끗하고 맑았다.
소년에게 허리를 숙여 우산을 받혀주고 있는 소녀의 검은 머리카락 끝에 달린 빗물이 방울져 맺혀 있었다. 지금 소녀는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주느라 소녀의 머리카락이 흠뻑 적셔지고 있는 것을 소녀 자신은 알고 있을까?
뚜두둑. 뚜두둑.
한동안 소년의 머리 위로 받힌 우산 위로 세찬 빗물이 격한 음악을 내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세찬 빗물 소리에 섞인 소녀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소년의 귓가에 들려왔다.
“오빠도 저처럼 슬퍼요? 많이 슬퍼요? 그래서 이렇게 비 맞고 있는 거예요? ……그런 건가요?”
“…….”
소녀의 눈동자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서.
“눈에 빗물이 섞여도 다 보여요. 지금은 저보다 오빠가 더 슬퍼 보여요.”
나 왜 이러지? 소녀의 말이 또다시 감정을 격하게 만들어 버렸다. 눈물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데도 소녀의 눈에 자신의 울상인 모습이 비쳤는가 보다. 고개를 얼른 숙이는데, 그때 또다시 소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감기 걸려요.”
따뜻했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따뜻한 것이었나? 온몸 가득 옅은 안개가 퍼지듯 따뜻한 무언가가 퍼져가는 찰나, 소년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소녀의 차갑게 식은 몸이 느껴졌다. 그 차가운 느낌에 소년이 고개를 드는 순간, 거짓말처럼 소녀의 몸이 금세 멀어졌다. 어느새 소녀의 손에 들려있던 우산은 그녀가 아닌 자신에게 씌어 있었다. 당혹감과 의구심을 한꺼번에 표출하고 있는 소년의 눈을 알아차린 것인지 소녀가 얼른 입을 열었다.
“비 그렇게 맞고 있으면 춥잖아요. 이거 쓰세요. 지금은 나보다 오빠가 더 이 우산이 필요한 거 같으니까…….”
눈과 눈이 마주치고, 잠시였지만 그들의 눈이 얽혀들었다. 소녀의 입에도 차가운 입김이 나오고 있었다. 금세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이 흔들렸다. 추울 텐데……. 너도 추울 텐데…….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소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소년은 희미한 미소를 짓는 소녀의 눈동자가 참 맑고 순수하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흐린 시야였지만 맑게 빛나고 있는 소녀의 눈빛을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맑은 눈동자를 보지도 아니, 어쩌면 보지 못할 거 같아 어느새 그에게 등을 돌려 저만치 뛰어가고 있는 소녀를 눈으로 쫓고 있었다. 소녀의 사라지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소녀를 쫓고 있었다는, 그리고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어느새 말라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사라졌다. 빗줄기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던 소녀의 인영도 그나마 지금은 더욱 더 세차게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소녀가 주고 간 노란 우산만이 그의 곁에 소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소나기가 그쳐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가 늘 말하던 소나기가 아름다운 이유……. 잠깐이지만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하늘은 정말이지 푸르고 맑았다. 그 소녀의 눈동자만큼이나.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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