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목청을 다듬고 곰삭히기 위해 담금질에 들어갔다. 목이 반쯤 쉬어있는 상태였는데 한나절 동안 상청을 질러대자 또 입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 그대로 쉬지 않고 목을 달구다 일순 멈추고 샘에서 물을 떠 목을 가셔냈다. 그리고 다시 바위에 올라 앉아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었다.
덜어내야 한다. 버려야 한다. 이제는 모든 걸 버리고 비움에 최선을 다하자. 소리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고 남은 찌꺼기까지 털어버리자. 그리고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생각을 닫아걸자. 자! 이제 내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내 눈엔 형상이 없고, 귀에는 구멍이 없다. 무겁게 짓눌리던 육신조차 없다. 주문처럼 외며 명상에 들자 몸과 마음이 차츰 홀가분해진다. 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없다. 내가 없으니 완전한 빛이요. 완전한 어둠이다. 이제 무의 세계로 들어간다. 무(無)란 빛도 어둠도 아닌 공(空). 즉, 비어있음이니 어떤 존재도 없다. 완벽한 공(空)이다.
(…)
내일모레가 추석이며 오늘이 백 하루째 되는 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물에 들어가 목욕을 끝내고 산에 올랐다. 그동안 무탈하게 백일을 보내게 되었고, 더구나 귀한 산삼까지 얻게 되어 감사하다는 인사로 늘 오르던 산정, 바위 위에서 동녘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앉았다.
먼 산등성이 위로 하늘이 붉어지며 태양이 떠오른다. 노래를 시작했다. 청량한 노랫소리가 눈부신 햇살을 따라 산 아래로 긴 여음을 남기며 퍼져나간다.
이제 더는 내 인생에서 소리에 대해 아쉬움도 욕심도 일어나지 않기를 소원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기원했다.
‘아직은 소리의 참맛을 깨달았다 자부할 수는 없겠으나, 언젠가는 참소리를 얻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서두르지 않으며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으리라.’
떠오르는 태양에 약속하며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 「함께 흐르다 - 홀로 가는 소릿길」 중에서
“자기… 나… 자기가 옆에 있어서 행복해… 그동안 정말 고맙고… 행복 했어… 자기 같은 사람… 내게 보내줘서… 고맙다고, 늘… 기도했어. 영현아… 나… 그 목걸이… 나 좀… 갖다줘.”
힘이 드는지 띄엄띄엄 쉬어가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괴롭다기보다, 오히려 평화로워 보였다.
영현이가 목걸이를 찾아오자 내게 건네며 속삭였다.
“나, 이거 해줘…, 목에 걸어줘.”
나는 터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목걸이를 받아 그녀의 목에 걸어주고, 끝에 달린 무지갯빛 소라따개비를 손에 꼭 쥐어주었다.
“고마워. 나 이거 꼭 잡고 있을 거야.”
“알았어. 놓지 말고 꼭 잡고 있어.”
느낌이 이상했다. 아까보다는 열도 좀 내리고 숨소리도 진정되는 것 같았으나, 죽음을 예감하는지 유언처럼 말하고 있었다.
“엄마, 나… 손 좀 잡아줘…, 엄마 손… 잡고 싶어.”
“영신아? 왜 그래? 엄마 여기 있어.”
어머니가 다시 손을 잡으며 대답하자,
“자기도 내 손 잡아줘.”
나는 울음을 삼키며 목걸이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자기 울지 마…, 엄마, 이 사람한테 고맙다고 해. 나…, 이 사람 때문에 그동안 정말… 행복했어.”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응?”
어머니의 대답 끝에 울음이 묻어나온다.
힘이 드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엄마… 자기, 나 지금 무척 행복해. 그런데 자꾸만 졸려. 이제 좀 잘래.”
그리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런데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지는 듯, 하다가 다시 조용히 잦아들더니 어깨가 늘어지며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누나, 눈 떠봐? 눈 떠보라고! 영신아! 아아! 으, 으으으.”
무릎에 안겨있는 영신의 얼굴을 흔들고 어깨를 흔들어봐도 아무 반응이 없다.
“영신아, 눈 좀 떠봐? 정신 차려! 영신아!”
“언니, 정신 차려! 으, 아아아!”
어머니와 영현이도 영신에게 달려들어 눈을 뜨라고 울며 소리쳐도 영신의 눈은 다시 떠지지 않았다.
“누나! 아아아! 영신아, 이러면 안 되잖아! 이렇게 가면 안 되는 거잖아, 아아아!”
새벽의 적막을 깨는 나의 처절한 절규가 나와 그녀의 틈 사이를 맴돌며 메아리친다.
영신은 내 무릎에 안긴 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고 다시는 뜨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영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몸부림치던 나는 가까스로 울음을 멈추고 영현이를 불렀다.
“영현아, 언니 옷 입히자. 언니 한복 있지?”
목에서 올라오는 피 울음을 쿨럭 쿨럭 삼키며, 영현이를 달래어 한복을 찾아오게 하고는, 나와 영현이 영신의 옷을 갈아입히기 시작했다.
“어흐흐흑! 영신아! 하늘나라에서는 이제 아프지 말고 행복해야 해. 안 그러면 나한테 혼난다. 으흐흐흑.”
갈아입히는 영신의 하얀 옷이 나와 영현의 눈물에 하염없이 젖어든다.
나는 영신을 무릎에 안고 오열하며 피눈물을 뿌렸다.
영신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영신을 내줄 수가 없었다.
영신의 아버지가 홑이불로 몸을 덮으려 했으나 나는 덮지 못하게 만류했다.
얼굴을 덮으면 천사 같은 영신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날이 밝아 와도 나는 영신을 내려놓지 않았다.
--- 「홀로 흐르다-함께 가는 사랑길」 중에서